<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15

첫 번째 밤

by 에스

15


7월 31일


그는 자신도 모르는 채 잔인할 정도로 날 비참하게 만든다



8월 12일


매 순간마다, 뭔가를 할 때마다

그와 함께했던 기억들이 겹쳐 나도 모르게 목구멍까지 말이 차오르는 걸 막느라


지친다


비싸디 비싼 록페스티벌의 망고빙수와

커피 아저씨가 타 줬던 정말 맛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뜨거운 햇볕 아래 땀이 흥건해 줄줄 내려오던 은색 돗자리, 그 위를 지나가던 개미들,

웃음소리.


오늘도 그를 보고 오는 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끝없이 울었다.


어떡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제 연락하지 말아야 할까

이제 그만해야 될까

정말 이제 그만해야 되는 걸까


그러자고 결심해 놓고는 막상 집에 오니

이도저도 못하는 꼴에 또 답답하다


내가 살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살 수 있을까

말을 꺼내면 어떻게 될지 너무도 뻔하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도 끝.



말을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같이 만나 이야기하고 지낼 여지는 남는 건데

그 작은 미련을 못 버려서 이렇게 안달이다.


그런데 어쩐다,

난 이제껏 그 미련 하나로 살아왔는데.


어떻게 하지?

그 없이 살 수 있을까

내가



10월 23일


꿈을 꿨다. 진짜 오랜만에 그를 보았다. 보고 싶은 사람은 꿈에 나오지 않았었는데 웬일로.

옛날에 살았었던 지금은 철거된 우리 집의 내 작은 방에 있었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오래간만에, 꿈에서까지 평온함이 전해졌다.


믿을 수 없을 만치 슬픈 꿈이었다.



12월 1일


<첫 번째 밤>


광주비엔날레에서 디자인 공모전을 하길래 그와 같이 나가기로 했다.

원격으로 몇 번 의견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역시 조모임은 얼굴을 보고 해야 진행이 되는 것이다.

그는 금요일 늦은 저녁에 차를 끌고 내게로 왔다.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된다. 그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 시간을 넘게 운전해 오다니. 예상대로 제대로 된 조모임 따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몇 시간을 피곤했을 텐데, 당연하다.


그는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며 뭔가를 얘기하다가 거의 기절하듯 잠들었다. 록페스티벌 잔디밭 위의 텐트에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눕자마자 코를 곤다.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넌센스같다. 말도 안 된다.


나는 한 잠도 못 잔 채 어둠 속에서 한참을 계속 그가 돌아누운 쪽만 바라보다가 슬금슬금 자리를 펴고 누웠다. 조금, 가까이 가도 괜찮을까, 하면서.


여섯 시에 일어나서 미역국을 끓였다. 할 줄 아는 게 미역국뿐이어서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그도 일어나서는 새벽의 어슴푸레함 속에서 동이 틀 때까지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미역국을, 그는 국물을 잘 안 먹는다며 건더기만 다 건져 먹었다.


그리고는 내가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하자, 우리를 동물병원 앞에 데려다주고는 친구와 여행을 간다며 급히 떠났다.


가끔씩 그런 그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구와도 밤을 지새 공모전을 짜고, 누구와도 하루 여행을 간다.

하긴, 그이니까 이해되기도 한다. 저 사람은 누구와도 곁을 둔다.


그와 있는 시간은 항상 두 배 정도 빨리 흘러서, 지나고 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게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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