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함께한 시간
14
여름
어느 봄날, 광고에서 우연히 지산에서 록페스티벌을 한다는 소식을 보고는 그에게 말도 하지 않고 얼리버드 티켓을 끊어놨었다. 7월이 돼서야 은근슬쩍 이야기를 하니 예상대로 그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페스티벌이 다가올수록 떨리고 기대되는 마음에 정신이 없었다.
페스티벌 당일.
용인에서 그와 만나 지산락페 대절 버스를 타고 조금 이동하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페스티벌 입구가 나왔다.
매표소에서 3일권 팔찌와 캠핑권 팔찌 두 개를 손목에 끼니 그제야 페스티벌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부채, 목걸이형 스케줄표 등등 안내원들이 주는 각종 기념품들도 챙기고 텐트를 받으러 줄을 섰다. 줄 서 있는 동안 우리는 셀카를 찍으며 온갖 난리 호들갑을 떨어 뒷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한참을 기다려 텐트를 받은 후 텐트존으로 이동했다.
텐트를 치는 곳은 굉장히 가파른 언덕이었다. 커다란 자갈과 잡초도 많은, 아무리 좋게 봐도 그냥 관리 안 하는 언덕일 뿐이었다. 우리는 (아마 둘 다 이런 텐트는 쳐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주 힘들게 텐트를 치고는 기진맥진해졌다. 텐트 안은 찜통같이 더워서 얼른 그곳을 빠져나와 페스티벌 장소를 둘러보았다. 곳곳에서 음악 소리와 함성 소리가 나서 드디어 록페스티벌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우리는 사물함에 가져온 짐들을 구겨 넣고는 너무 더워 일단 뭔가 시원한 것을 먹기로 했다. 페스티벌장 안은 뭐든지 엄청나게 비쌌다. 우리는 뚜레쥬르에서 빙수를 먹기로 했다. 그나마 가격대 괜찮은 건 망고빙수여서 그걸 시켰는데, 정말이지 내 입맛으로는 끝내주게 맛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나름 괜찮다며 잘 먹었다.
공연장 주변은 온통 푸른 잔디밭이었다. 장마철이라 비가 올 거란 예상을 깨고, 햇빛은 3일 내내 무섭게 내리쬐었다.
우리는 무난해 보이는 공연장을 골라 그 근처 잔디에 은색 돗자리에 양산을 펴놓고 누워서 관람하거나 공연이 재밌어 보이면 가서 같이 뛰어놀았다.
첫날 엔딩 공연은 무려 라디오헤드여서 페스티벌에 온 모든 사람이 우글우글 공연장에 모였다.
우리는 라디오헤드를 보기 전에 미리 샤워를 했다. 세상에.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해도 그렇지, 물은 아예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덜덜 떨면서 찬물을 뒤집어쓰니 낮동안 점프만 하던 다리에 쥐가 나서 애를 먹어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거의 9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는 물결같이 가득 찬 사람들을 헤치고 공연을 보러 갔다.
라디오헤드는 3일간 본 공연 중 최악이었다. 애초에 잘 알지도 못하는 그룹이었을뿐더러, 부르는 노래 자체도 너무나 실험적이고,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걸 또 앞에서 보겠다고 설레발쳐서는, 그를 끌고 앞자리로, 앞자리로, 앞자리로 계속 헤치고 나가서는 그 실험적인 노래들을 끝까지 들었다. 심지어는 엔딩곡으로 creep을 부르지도 않았다.
라디오헤드 공연이 끝나고 나니, 옆 공연장의 어떤 밴드가 라디오헤드를 비꼬는 듯 당당하게 creep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 되어도 공연은 끝날 줄 몰랐다. 라인업은 새벽까지 꽉 차 있었고 사람들은 떠날 줄 몰랐다. 밤이 되자 술을 파는 부스가 우글우글했다.
그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나는 맥주 같은 걸 마시며 신나게 돌아다녔다. 우리는 그렇게 지칠 때까지 공연을 보다가 텐트로 기어들어왔다.
바닥에 스펀지 자리를 깔았지만 불편한 건 여전했다. 그는 텐트의 완전 구석에 누워, 아주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잠들었다.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정말이지 누워서 눈을 감자마자 코를 미친 듯이 골았다.
바깥에서는 끝나지 않은 노랫소리와 밴드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 옆에서는 세상이 떠날 것 같은 코 고는 소리에 나는 귀를 막고 돌아눕고 별의별 짓을 해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이것이 그와 같이 잔 첫 번째 밤의 기억이다.
해는 아주 일찍 떴고, 동시에 텐트 안은 찜질방처럼 뜨거워졌다. 나는 거의 반 혼수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언덕 밑에서부터 여자 외국인이 올라오면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정말 쉬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텐트 안에서 사람이 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결국엔 참다 참다 몇몇 남자들이 영어로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킥킥대며 일어났다. 텐트 바깥에는 우리가 썼던 수건들이 사방에 널려 있고, 텐트 위에는 그의 티셔츠와 속옷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널려 있다. 나는 텐트 안에 내 옷을 널어놓으며, 이게 과연 마를까 아니면 햇빛에 익을까 궁금했다.
우리는 적당히 밥을 먹고 페스티벌장 바깥으로 산책을 나갔다.
길가에는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아이스커피 부스가 있었다. 어떤 아저씨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대충 때우는 장사가 아니고 굉장히 책임감이 투철해 보였다. 우리는 아이스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는 이 일이 전업이 아니라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이건 부업이랜다.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우리가 감탄하자 아저씨는 조금 쑥스러워했다. 아저씨가 정성 들여 내려준 아이스커피는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걷다가 호수를 발견하고는, 나무 그늘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잠시 쉬기로 했다. 간간히 돗자리에 올라오는 개미를 떨쳐 내며 우리는 느긋하게 그 모든 풍경들을 기억 속에 담아 두었다.
페스티벌장에는 공연 말고도 주변에는 온통 이벤트 천지였다.
음료수 회사에서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음료수를 주고 있었다. 우리는 몇 번이나 철판을 깔고 음료수를 받아먹었다. 부채를 주는 곳도 있었고, 이벤트에 참여하면 기념품을 주는 곳도 있었다.
우리는 빌리프 부스에 줄을 서서 과녁을 맞히고는 샘플을 받았다. 직원이 폴라로이드로 우리를 찍어 주었다. 파란색 빌리프 배경에 서서 찍은 사진이 맘에 들었다.
삐콤씨에서는 실물 크기와 똑같은 박찬호 사진을 내걸고 야구공 던지기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나는 워낙에 운동실력이라고는 없으니 탈락이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유심히 지켜보다가 결국 단번에 박찬호 야구공을 받았다. 우리는 박찬호 아저씨 등신대 양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그는 한 번 더 모른 척 이벤트에 참여해서는 박찬호 야구공을 또 받았다. 그는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엠넷에서는 그를 정말 빠져들게 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농구공을 던져 골인시키는 이벤트였는데, 성공하지 못해도 엠넷 로고가 박힌 핫핑크색 고무팔찌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팔찌 하나를 받고 만족했지만 그는 몇 번이나 도전하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끝끝내 성공하지 못하고는 팔찌만 여러 개 받은 채 아쉽게 발걸음을 옮기던 그의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다.
이벤트장을 죽- 돌고 나자 우리 두 손에는 온갖 것들이 들려 있었다. 팔찌며, 부채며, 폼클렌징 샘플이며, 칵테일 주스며. 그는 상업적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폼클렌징 샘플을 거의 쓸어오다시피 했다.
예상외로 재미있었던 공연도 있었다.
우리는 공연장 한가운데에 돗자리를 깔고 잠시 쉬고 있었다. 우글거리며 서 있는 사람의 숲을 그림자 삼아 신발도 벗어놓은 채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창완 밴드가 '기차로 오토바이 타자'라는 대목을 부르자마자 난리가 났다.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기차놀이를 하며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우리 돗자리는 눈 깜짝할 새에 엉망이 되고 운동화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깜짝 놀라 운동화를 찾으러 다니고, 밟혀 죽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기분을 체험했다.
다행히 둘 다 무사히 생존해서는 같이 김창완밴드의 공연을 즐겼다.
둘째 날 밤에는 이적의 공연이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이적을 기다렸다. 내가 이적의 실루엣으로 꾸며진 무대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자, 그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우리 모습도 찍고 싶었지만 너무 어두워서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이적의 공연은 기대 외로 록페스티벌에 어울리지는 않았다. 편안하고, 좋았다.
마지막 날 넬 공연에는 작정하고 스테이지 앞에 붙어 있었다.
그는 잠시 뒤에 오겠다며, 다른 공연장의 버스커버스커를 보러 사라졌다.
나는 넬 전타임의 공연 때부터 주야장천 앞자리에 붙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넬 또는 그다음 공연인 비디아이즈를 보기 위해서 아주 치열하게 앞자리를 사수하고 있었다.
햇볕은 식을 줄을 모르고, 우리는 모두 손수건이나 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처럼 바닥에 쭈그렸다. 보다 못한 직원이 가져온 얼음을 서로 나누어 먹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훈훈한 기억이다.
드디어 넬의 등장. 넬은 특유의 '귀찮아 죽겠네'라는 말투로 몇 마디 인사를 해주었다. 노래는 늘 그랬듯이, 내 마음을 후벼 판다. 한 발 내딛을 틈도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서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잔디밭으로 나오니, 그도 끝부분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날 밤은 둘 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찬물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가져온 옷은 이미 다 땀에 절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시끄러운 새벽 음악 속에서 나는 오른발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해서 돗자리를 깔고 그냥 웅크려 누운 채 공연을 들었다.
그는 내게 바구니에 담아 먹는 신기한 술을 사주고는 옆에 있다가 재밌어 보이는 공연에 뛰어들어 잠깐씩 놀고는 했다. 거의 잠들지 못한 채 아침이 되었고 우리는 이틀밤을 잔 텐트를 접었다.
모든 대중교통이 거의 첫차인 시간이었다. 우리는 거의 눈을 뜨지 못한 채 공연장을 어디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른 채 지하철을 탔다. 나는 지하철을 타는 내내 졸았고, 그는 그래도 조금 더 어른답게 나를 챙기며 웃어주었다. 나는 거의 비몽사몽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눈을 한 번 감고 떴더니, 그새 도착해 있었다.
우리 둘이서 간 첫 여행은 이렇게 피곤에 절어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