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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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힘든 나날이다. 고등학교로 가고 싶은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힘들다고 소문이 난 어느 중학교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근무를 해 보니, 아이들은 착한 편이었다. 오히려 직장 동료들 때문에 더 힘들었다.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나를 발령동기들은 다소 불편해했다. 네 명의 발령 동기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서로의 집에 찾아가서 놀기도 하고, 여행도 같이 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초대받지 못했고 한 학기째 겉돌고 있다. 관리자는 막돼먹은 편은 아니었지만, 첫날 내 얼굴을 보더니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라고 말해 기분을 망쳐놓았고, 맡은 업무는 손에 익는 게 늦어 몇 번이나 똑같은 실수를 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난생처음으로 매 달 같은 날짜에 들어오는 월급과, 주말마다 나를 보러 찾아와 주는 K, 가끔씩 보여주는 아이들의 순진한 웃음에 힘을 얻으며 버텼더니, 어느새 9월이다. 아직까지 낯선 것들이 많고 모든 게 두렵지만,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는 그때 그 말을 기억하자.
8월 22일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깼더니, 목이 마르지 않는데도 갈증이 났다.
아마 꿈 때문일 것이다. 생생히 기억나는 꿈의 내용은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갈증을 가져온다.
우리는 정류장에 있었다. 철부지 같았던 대학시절 그대로 투닥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하거나 서로를 놀리기 바빴다.
하늘은 구김 한 점 없이 맑았고, 우리는 어딘가에 놀러 갔다가 이제 헤어지려는 참인 것 같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버스가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버스는 도착했고, 잠깐 정차하고는 곧바로 출발하려고 해서 우리는 다급히 버스를 향해 뛰어갔다.
그는 나를 허둥지둥 버스를 태워주었고, 그렇게 꿈에서 사라졌다.
하루종일 그리움이라는 갈증에 허덕였다.
동시에 이 죄책감 역시 진실이기 때문에 심장은 숨 쉴 수 없이 죄어든다.
도대체 어쩌자는 거지. 미친 건 아닐까 혹시 내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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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그의 생일 이벤트를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이번에도 역시 작년처럼 서프라이즈를 하기로 했다. 도서실 41번 그의 자리에 몰래 폭탄을 터뜨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의 생일을 준비하는 건 항상 즐겁다. 매년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를 해주어야지! 이젠 거의 책임감에 가깝다.
생일 당일날 낮.
독서실에 몰래 숨어든 나는 그가 자리에 없는 걸 발견하고는 재빨리 일을 시작했다. 책상 위에는 조각 케이크를 올려놓았는데, 사실 이건 종이로 만든 케이크이다. 포토샵으로 직접 도안을 만들어서 조립하고, 안에는 과학실에서 훔쳐온(?) 전구와 소켓을 이용해서 촛불에 불이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과학실 꼬마전구는 너무 작았기 때문에 책상 위에 그냥 올려놓기만 하면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추가 준비물을 가져왔다. 나는 도서실 칸막이 위에 준비해 온 4절 크기의 검은 도화지를 씌워 그의 자리를 악의 소굴처럼 자리를 덮어 버렸다. 주변에서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선글라스를 쓴 내 얼굴은 철판이었다. 테이프를 찍-하고 뗄 떼는 소리가 너무 커서 진땀이 났다.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테이프를 조금씩 떼어 붙여 완성하고는 부리나케 자리를 벗어났다. 온몸이 땀투성이었다. 나는 매미 허물을 가지고 놀던 커다란 나무 밑에서 땀을 식히며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그가 오지 않아서 전화를 했다.
"오빠, 지금 어디예요?"
"나? 서울이지. 생일이라서 가족 보려고 왔어."
"서울이요????"
"왜, 무슨 일이야?"
세상에. 정말이지 끔찍한 기분이었다. 나는 긴장이 탁 풀려 나중에 독서실 와서 보라고 하고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를 탔다.
나중에 자기 자리를 본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종이케이크는 그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간직 중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