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54

시도하다

by 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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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그 후로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거의 매일 밤을 울었는데 그 역시 만만찮게 힘들어 보였다. 거의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했다. 막상 파견 신청은 했어도 어쨌든 걱정은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10월 한 달을 학교 축제 준비 때문에 미친 듯이 바빴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압박과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28일 밤에 속 쓰림이 너무 심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못 잘 정도의 아픔은 처음이었다. 끙끙대다가 겨우 의식을 잃자마자 가위에 눌리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잠에서 깼다.

그러고는 무서워서 다시 잠들지 못한 채 꼬박 밤을 새웠다. 그 와중에 그가 너무나 보고 싶었고, 눈이 빠지게 울었다.


덕분에 29일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속은 쓰렸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하루 종일 굶은 상태로 그날 하루를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관리자는 프로그램 순서가 마음에 안 든다며 최후까지 꼬장을 부렸다.


겨우 겨우 어느 정도 일을 끝내고 4시가 넘어서 나는 교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에게 전화가 왔는지 내가 했는지 아무튼 우리는 통화를 했다.


나는 어젯밤에 힘들었던 얘기를 했다. 절실히 그가 필요했다. 수면부족과 위장병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 따위는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아무렇지 않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재워달라는 내 부탁을 끝끝내 거절했고, 나는 거의 화를 내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자신이 비참했다. 쓰레기 같았다. 여자친구를 들먹이는 그 사람에게도 화가 났다. 차라리 그런 핑계를 대지 말고 거절한다면 이 정도까지 비참하지는 않을 텐데.


무너질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내겐 그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그는 이제 결코 내 곁에 있어줄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까지 그에게 의지하는 걸까.


왜 나만.


바닥끝까지 비참해지는 심정에 그날 가기로 마음먹었던 병원이고 약국이고 그냥 다 지나쳐 집에 가 쓰러졌다. 너무나 한심한 꼬락서니에 밥을 먹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고 쓰러져 눈이 떠지지 않을 때까지 울었고, 배가 아파 잠이 들지 않아 결국 약을 먹고 조금 잤다.


다음날, 학교 축제날이 되자 몸은 만신창이었다. 눈은 붓고, 배는 점점 더 아파 숨 쉴 때마다 고통스럽고, 그 사람 생각을 하니 심장은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온종일을 강당에서 식을 준비하고 진행 과정을 점검했다. 그는 나를 보고도 무시한 채 지나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무시한 채 행사를 진행했다.


축제는 다행히 무사히 끝났다. 뒷정리를 하고 회식자리를 가서 고기를 먹었다. 이틀 만에 처음으로 뭔가를 먹자 기분이 좋았다. 그는 사람들 틈에 있다가 어느 순간 나에게 와서 수고했다며 어깨를 툭툭 토닥이고 갔다.


그 가식적인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는 동생을 걱정하는 착하고 섬세한 오빠 연기를 할 뿐이었다.

학교에서도 연구실에서도, 신경 쓸 일이 있으면 밥을 안 먹는다며 걱정된다며, 그런 말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다. 내가 신경 쓰는, 밥을 먹지 않을 만큼 힘든 이유는 이제까지 전부 당신 때문이었는데.

정작 내가 필요할 땐 언제나 내치는 주제에. 그 행동이 가식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나는 동료들이 주는 술을 즐겁게 받아먹으며 보란 듯이 술을 계속 마셨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동학년들과 모여 자리를 나왔다. 그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카톡으로 걱정해 주는 척하지 말라고 쐈다. 그러자 그는 도리어 나에게 화를 냈다.


적반하장의 반응에 나는 멍청하게도 휘둘리고 말았다. 미안하다며 지금 어디냐고 전화하자 그는 혼자 여행을 갈 거라고 했다. 동학년들과 헤어져 부리나케 집으로 와서는 계속 카톡을 했다.

운전 조심해서 하고 꼭 답장하라는 카톡을 마지막으로 보내놓자, 그다음부터는 분노도, 슬픔도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그저 행동만을 했다.


냉장고에 있던 소주 한 병을 원샷으로 다 마시고는, 수면유도제 두 알을 먹었다.

보일러를 30도까지 켜고,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고, 부엌에 가서 칼로 왼쪽 손목을 그었다. 생각만큼 아프진 않았다. 두어 번 그어 피가 흐르는 걸 확인했다. 침대 귀퉁이에 엎드려 왼손을 바닥에 놓인 세숫대야에 담그고는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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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한 새벽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고, 상황파악이 조금씩 되었다. 일어나 보니 만신창이었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 침대에 토한 모양이었다. 옷이며 머리카락이며 이불이며 침대 시트며 전부 토사물 투성이었다. 세숫대야는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허탈했다. 이래서 다들 실패하는 거로군. 하고 납득하고 나자 깔끔하게 인정했다. 이 방법은 안 되겠노라고.


얼마 전에 구입했던 원피스의 양쪽 소매는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속은 뒤집힐 것 같았다. 나는 화장실로 기어가 다시 토했다. 손목에서는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나는 몸을 씻고 원피스를 돌돌 말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 들른 후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와서 다시 잠깐 잠을 잤다.

일어나서는, 주말 내내 이불을 빨고, 침대 매트리스 커버를 벗겨서 빨고, 방청소를 했다.


그에게서는 이제 그런 부탁은 하지 말라는 식의 카톡이 와 있었다.

그가 그런 반응을 보여서인지, 아니면 내 행동이 문제인지, 우리 관계가, 내 마음이 조금씩 변질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젠 정말, 예전처럼은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출근하는 매일매일을 손목에 보호대를 해서 상처를 감추며, 다른 방법을 다시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든 처음 한 번만 힘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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