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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Oct 05. 2023

셀프 인테리어의 길은 멀고 험하다

3부 EP04. 사무실 정비와 회색 바닥

   번화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사무실은 아담한 9평 남짓의 직사각형 공간이다. 

   액세서리샵으로 운영 중이었던 가게 내부는 대체로 깨끗한 편이었고, 권리금에 돈을 더 추가해서 에어컨과 파티션도 그대로 놔두고 가셨다. 그러나 흰색 계열의 바닥 데코타일은 많이 더러워져 있어서 다시 재시공을 하기로 했다. 바닥 타일을 뜯는 것은 강이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육지에 잠깐 다녀온 사이에 혼자서 바닥을 다 뜯어낸 것이다. 거의 이틀이 걸렸다고 한다. 이 더위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기존에 붙어 있던 지저분한 바닥 데코타일을 뜯어내고 나니 촌스러운 주황색의 타일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새로운 바닥으로 모던하고 깔끔한 느낌의 다크그레이 색깔을 골랐다. 가로, 세로가 60센티미터나 되는 거대한 데코타일을 52장이나 구매했는데, 두 박스에 나눠서 배송이 되었는데도 너무 무거워서 한 번에 세 걸음씩 겨우겨우 나를 수 있었다. 강이 일찍 퇴근한 어느 날, 우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기존 바닥에 남아 있는 접착제 흔적을 껌칼로 열심히 긁어내서 버린다. 그리고 빗자루로 남은 가루와 쓰레기를 깨끗하게 쓸어서 매끄럽게 만든 후 데코타일을 붙인다. 데코타일은 접착 형식으로 비닐을 벗겨 내서 붙이기만 하면 끝이라서 매우 간편하다. 두께는 2밀리미터 정도로 칼로 몇 번 그어서 구부리면 쉽게 잘리기까지 한다. 셀프 인테리어가 이렇게 쉽다니. 바닥 시공하시는 분들은 뭐 먹고살지,라고 생각하며 꼼꼼히 바닥을 붙여나갔다. 타일을 전부 붙이는 데 거의 두 시간 넘게 소요된 것 같다. 그런데 아뿔싸! 타일이 세 장 정도 모자란 것이다. 한 세트(4장)만 더 샀어도 됐는데… 나는 배송비에 치를 떨며 다시 한 세트를 주문했다. 그래도 거진 90프로 이상 완성된 바닥을 보니 너무 깔끔하고 예뻤다. 촉감도 부드러워서 신발을 벗고 다니기로 결정했다. 바로 신발장과 실내화도 주문! 통장 잔고 바닥나는 소리가 들렸지만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별도리가 없었다.


   며칠 쉬고 나서는 중고가구점을 돌아다녔다. 사야 할 가구가 생각보다 많았다. 8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 내 작업용 작은 책상과 의자, 냉장고, 식기류를 놓을 테이블, 책장, 신발장... 구입 목록이 끝도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중고가구점부터 하나씩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물건이 많지 않았다. 막상 물건이 있더라도 상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의 네다섯 군데를 돌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라동이라는 조금 먼 데까지 가보고, 그중에 제일 괜찮은 곳에서 가구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아라동은 제주대학교가 들어서 있는 동네로, 공항에서 좀 더 내륙 쪽으로 내려가야 있는 곳이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마을 한켠에 가구점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가본 가구점 중에 가장 컸다! 무려 건물이 두 개나 있었고, 테이블과 의자, 책장들의 종류도 엄청 다양한 데다가 상태도 좋았다.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가구들을 구입하기로 했다. 견적을 내서 입금을 하고, 배송날짜를 지정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내심 뿌듯했다.

   그러고 나서는 중고마켓으로 나머지 자질구레한 가구들을 검색했다. 컬러프린터와 프린터를 놓을 선반, 가구점에서는 비싸서 사지 못했던 의자들을 값싸게 구입했다. 지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술 공방을 하기로 했으니, 미술 재료와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오일파스텔과 앞치마, 팔토시, 필기도구, 종이류, 클립보드, 거기에 식기류와 커피믹스, 음료까지... 정말이지 끝이 없었다. 가게를 하나 차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절감하며 거의 매일 인터넷 쇼핑을 했다.


   쉴 새 없이 바쁜 평일이 가고 토요일이 되었다. 분명 스케줄을 짜서 바쁘고 알차게 평일을 보낼 때만 해도 뿌듯하고 기뻤는데, 토요일이 되자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었다. 너무 지친 걸까, 싶어 잠도 푹 자보았지만 우울함은 계속되었다. 나는 비상약을 먹고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오후 2시에는 그림 모임에서 영화를 같이 보기로 했는데, 막상 가려니 너무나 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이미 참석하기로 한 일정이라 마음을 가다듬고 약속장소로 갔다. 우리는 3시간 동안 공간을 대여해서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보았다. '루이스웨인'이라는 고양이 화가에 대한 영화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주연을 맡은 데다가 내용도 흥미로워서 몰입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여느 천재 수학자나 화가들처럼, 그 역시 말년이 불행했다. 어째서 감수성이 예민하거나 머리가 좋은 훌륭한 사람들은 쓸쓸하게 죽는 걸까. 이유를 모르겠다.


   일요일이 되었다. 강이 휴무라고 하며 아침 10시쯤 바닥 시공을 마무리짓자고 했다. 우리는 배송 온 나머지 바닥 타일들도 붙이고 드라이기로 열처리를 했다. 데코타일 뒷면에 발라져 있는 접착제로 붙어 있기는 하지만, 열을 가해주면 들뜨지 않고 더 튼튼하게 붙는다고 한다. 내가 드라이기로 열처리를 하는 동안 강은 벽과 맞닿는 타일 가장자리에 실리콘 처리를 했다. 기나긴 작업이었다. 우리는 근처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다시 돌아와 작업을 마무리지었다. 아침 10시에 만나 작업을 했는데, 끝나고 집에 와서 씻고 나오니 오후 4시가 되어 있었다. 너무 피곤한 한 주였다. 내일은 아침에 가구들이 배송 오기로 되어 있다. 다음 주도 아마 바쁜 한 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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