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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Sep 27. 2023

맨 몸으로 던지는 도전

3부 EP03. 부산 여행과 클라이밍 체험

   강의 권유로 부산에 가게 되었다.


   강은 고향이 부산으로, 부산에서 살 때는 클라이밍 센터를 3년 정도 다녔다고 한다. 이번에 클라이밍 모임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다며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길래, 평소에도 관심이 있던 스포츠여서 같이 가서 해보기로 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또 한참을 가서야 클라이밍 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자 강이 내 손가락 마디마다 테이핑을 해 주었다.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을 접지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열 손가락을 꼼꼼하게 테이핑 해주고는, 본인 손에는 대충대충 테이프를 감는다.


   클라이밍 센터는 모든 벽이 전부 색색깔의 홀드(벽에서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서 잡거나 밟을 수 있는 부분)로 빼곡하게 덮여 있다. 높이는 낮았기 때문에 로프는 매지 않고 맨몸으로 오를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홀드들을 보고 당황한 내게 강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각각의 홀드들은 난이도가 다른데, 이곳은 빨주노초파남보흰검 순서로 난이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나는 가장 쉬운 빨간색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벽 아래쪽에 빨간색 테이프가 붙어 있는 홀드를 찾아 밟거나 잡고 시작을 한다. 같은 색깔의 홀드들만 골라서 밟거나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손에 땀이 나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초크가루를 손에 바르는 것이 좋다. 조금씩 조심해서 올라가다가, 맨 위에 빨간색 테이프가 붙어 있는 홀드를 두 손으로 잡고 3초간 버티면 성공이다. 내려올 때는 반대 순서로 조심해서 내려오면 된다. 

   난해해 보였는데, 실제로 설명을 듣고 해 보니 빨간색은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강이 골라주는 쉬운 코스들을 하나, 둘 도전해 보았다. 그러는 동안 클라이밍 일행들이 속속들이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었다. 강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행들이 클라이밍을 많이 해 본 모양으로, 초록색 이상의 높은 난이도에 도전을 하고 서로를 응원해 주었다. 실패해서 떨어질 때는 반드시 엉덩이부터 떨어져야 다치지 않는다. 나도 도전을 하다가 꽤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바닥이 아주 푹신해서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처음 체험해 본 클라이밍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고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하지만 온몸의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이니만큼 금방 지쳤다. 나는 거의 끄적거려 보는 수준으로 활동을 하고 남은 시간은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보냈다. 어떤 여성분은 정말 어려운 코스를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을 재개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결국 성공하는 건 보지 못했지만, 저런 정신이면 뭘 해도 성공할 것 같았다. 

   우리는 6시쯤 정리를 하고 근처의 고깃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하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다들 외향적인 성격이라 처음 참여하는 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강과 나는 따로 빠져나와 꼬치집에서 간단하게 술을 한 잔씩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튿날, 강은 제주로 돌아가고 나는 울산 본가로 와 엄마를 만났다. 엄마와 만두가 단둘이 살고 있는 집은 늘 그렇듯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만두는 엄마가 관리를 잘해주셔서 생각보다 털이 꼬질꼬질하지 않았다. 매일 약을 먹여서 구내염도 덜해 보인다고 하셨다.

   저녁에는 동생과 통화를 했다. 7월 말에 휴가가 잡혔다며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길래, 포항으로 가보기로 했다. 동생은 나에게 여행경비를 일부 보내주었고, 나는 그걸로 렌터카를 예약하고 기차 예매를 하고 여행 동선을 짰다.


   다음 날에는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거의 유일하게 연락하는 중학교 동창으로, 우리 둘 다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반항적인 이미지에 끌렸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친구들 단 한 명도 같은 반이 되지 못해서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잠만 자던 나에게 그 아이가 먼저 다가와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라면도 끓여 먹고, 비슷한 취향의 음악도 들으며 친하게 지냈다. 부모님이 하던 작은 동네마트를 이어받아 엄청 큰 마트로 번창시킨 아이로, 1남 1녀 중 둘째 딸인데도 불구하고 대장부처럼 당차고 멋진 사람이다. 3년 사귄 남자와 결혼을 한다며, 나에게 부케를 받아달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다음 날. 엄마를 모시고 울산대공원에 수국을 보러 갔다. 오랜만에 가보는 대공원은 정문에 스타벅스도 생기고 뭔가 더 번화하고 깨끗해져 있었다. 수국 정원은 규모가 작긴 했지만 다양한 종의 수국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우리는 신나게 사진을 찍고, 집에 오는 길에는 집 근처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었다. 당 수치가 높아 식단 조절 중인 엄마는 치킨이 정말 오랜만이라며, 맛있게 드셨다.


   이렇게 육지 일정이 다 끝나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늙은 엄마를 보고 오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부산의 클라이밍도, 다 같이 먹었던 삼겹살도, 친구와 함께 먹었던 점심과 커피도 빛바랜 기억처럼 희미해지고, 결국엔 버스 창밖에서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엄마 얼굴만 선명하게 남는다. 다시 얼마간은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제주에서 내 할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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