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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Sep 22. 2023

위기와 기회는 한끗차이

3부 EP02. 사무실을 계약하다

   어느 날, 강이 부동산 앱을 통해 좋은 상가 매물을 발견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주차 지옥으로 유명한 연동이었는데, 매물 상태와 가격이 워낙 좋아서 일단 가보기로 했다.

   오후 1시에 간다고 연락을 해놓고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했다. 그런데 가게 안에 들어서자, 이미 두 명의 사람이 와서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보다 한 발 늦은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곧바로 계약을 한다고 했다. 눈앞에서 좋은 매물을 놓친 우리는 허탈하게 돌아왔다. 좋은 매물은 진짜 빨리 사라지는구나, 를 체감하며.

   그리고 다시 며칠 뒤. 또다시 강이 좋은 매물을 찾아왔다. 이번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였는데, 무려 번화가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몫이 매우 좋았다. 건물 1층 코너에 위치한 8평짜리 작은 가게로, 현재는 여자 사장님이 액세서리 샵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인의 권유를 받아 서귀포로 이전한다며, 가게에 있는 가구들 중 원하는 게 있으면 주고 가겠다고 인심까지 써 주었다. 건물 컨디션도 좋았고 보증금과 권리금도 나쁘지 않아서 나는 바로 계약하기로 했다.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까지 다 떼어서 확인하고, 부동산에 방문해서 상담도 받았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깨끗한 건물이었다. 건물주 사장님은 아빠뻘 되는 아저씨인데, 우리 가게 바로 옆에서 복권방을 하고 있었고, 사모님은 건물 위층에 거주하는 것 같았다. 사장님 가족이 바로 옆에서 같이 지낸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권리금과 보증금, 연세까지 다 합치니 대략 2천만 원 정도가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액세서리 샵 사장님은 남은 계약기간 동안 부지런히 짐을 정리했다. 나와 강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가게를 보며 어느 공간을 어떻게 쓸지 상의했다. 일단 바닥에 깐 데코타일이 너무 지저분해서 떼고 새로 깔기로 했다. 


   일단 상가 임대라는 걸 저지르긴 했는데, 이제 여기서 뭘 할까.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림 모임에 있는 디자이너 동생 B가 나에게 디자인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내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다룰 줄 안다고 하자 그가 본인의 일을 같이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우선 그가 주는 숙제를 받아서 하고, 내가 못하는 부분을 피드백받는 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사무실 완공이 되면 같이 출근해서 디자인 작업을 하거나 그림 모임 장소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외에 어떤 용도로 사무실을 쓰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림 모임을 시작하면서부터 다루게 된 오일파스텔에 초점이 모아졌다. 오일파스텔은 수채화 같은 난이도 높은 미술도구와는 다르게, 초심자도 어느 정도는 다루기가 수월한 도구 중 하나다. 그럼에도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도구라서 이번 기회에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며 오일파스텔 드로잉에 대해 알리고 싶어졌다. 나와 강은 현장답사 겸 오일파스텔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는 공방 한 군데를 방문해 보았다. 넓은 공간에 테이블 여러 개를 두어 카페 같은 분위기의 공방이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으니 사장님께서 오일파스텔 도구함을 가져다주셨다. 마주 앉아서 1대 1로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고, 주어진 재료를 사용해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거나, 도안을 활용해서 색칠을 하는 식으로 진행하면 되었다. 엽서보다 조금 큰 크기의 종이들과 도안이 있었고, 오일파스텔과 색연필 등이 제공되었다. 나는 도안 엽서를 골라 색을 칠하고, 강은 도안이 없는 종이에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공방을 나오면서 우리는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나는 손님들이 알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내가 옆에서 지도를 해줘서 좀 더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리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일파스텔 또한 48색 정도로 색상이 다양하게 준비하고, 내가 옆에서 꼼꼼히 지도해 주면서 작품 하나를 완성해서 가져가는 걸 목표로 한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원데이클래스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방문해서 본인들이 작업하던 그림을 마저 그리는 자유미술작업도 추가하고, 모임용으로 공방을 대여하는 서비스도 생각해 보았다. 이제까지 그림 모임을 하면서 느꼈던 불편함이 반영된 것이다. 동네 카페를 전전하면서, 눈치를 보며 그림을 그렸던 경험이 많았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만의 공간에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루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강과 B도 좋은 생각이라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주었다. 나는 그들의 응원과 격려를 바탕으로 공방 운영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위기는 끊임없이 내 주위를 맴돌며 달려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럴 때마다 내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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