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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Nov 25. 2023

사랑의 형태

3부 EP12. 엄마와 작별

  


   한 달간 제주에서 나와 지내던 엄마께서 슬슬 다시 육지로 올라가시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제주에서 같이 살자고 꼬셔도, 20년이 넘게 살던 터전을 떠나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물론 그 기분은 나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엄마의 생신날이 되어 공방 휴무를 내고 이곳저곳 놀러 가기로 했다. 먼저, 가장 보여드리고 싶었던 카멜리아힐에 갔다. 가을의 카멜리아힐은 수국도, 동백도 없었지만 대신 가을정원이 새로 개장해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각종 그라스와 팜파스, 억새와 가을꽃들이 유럽 정원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엄마는 꽃을 좋아하신다. 간간이 예쁜 꽃을 발견하면 전화 외에는 잘 사용하지 않으시던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새삼 엄마가 이런 곳을 오래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는 건강하신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카멜리아힐은 가을 정원을 개장하면서 예쁜 포토존을 아주 많이 만들어 놓았다. 특히, 거울을 군데군데 설치해서 이렇게 찍어주는 사람 없이도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하루 만에 카멜리아힐에 여미지 식물원까지 휩쓸고 왔다. 사실 식물원은 내가 가고 싶어서 끌고 간 것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그래도 각종 온실의 식물을 재미나게 구경하고 두 사람 다 좋아하는 멸치국수를 먹었다. 엄마 생신이어서 놀러 왔다고 했더니 가게 사장님은 굉장히 부럽다면서 친절하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 주셨다.


   집에 오니 저녁이었다. 나는 강을 불러서 셋이서 조촐하게 생일 파티를 했다. 케이크를 사 온 것을 눈치채시고는 무슨 케이크냐며 잔뜩 잔소리를 하셨지만, 막상 초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니 정말 함박웃음을 웃으셔서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파티를 하고, 강은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약을 먹지 않고 잠을 자려고 누웠다. 요 몇 주간 졸음이 너무 심해 약을 끊은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아침에 졸리지 않은 대신 불면증이 생겼다. 거의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드는 날도 있다.

   결국 다시 일어나서 비상약을 먹었다. 잠드는 걸 도와주고 아침에 졸음도 없는 그런 약이다. 근데 딱 그뿐이다. 우울증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가 육지로 가시는 날이 다가올수록 극심한 우울과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엄마 앞에서는 한없이 듬직하고 싹싹한 딸이었지만, 침대에 누워서 소리 내지 않고 눈물바다가 되는 날도 있었다. 


   결국 육지에 가시는 날은 왔고,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옷가지도 몇 개 들고 오지 않으셔서 짐은 얼마 없었다. 공항에서 같이 있다가 배웅까지 하고 오려고 했는데, 그 넓은 제주 공항 주차장에 정말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다가 어쩔 수 없이 엄마만 게이트에 떨궈드리고 돌아와야 했다. 엄마는 혼자서도 용감하게 비행기를 잘 타시고 집으로 귀가하셨다. 이제 혼자서 비행기도 잘 타신다며, 칭찬을 해 드렸다.


   공방으로 출근을 하자마자 예약 손님이 와서 정신없이 클래스 진행을 했다. 밤에는 그림모임 동생 m이 연락해 와서 강과 함께 셋이서 애월 음악바에 갔다. 엄마가 오늘 육지로 가셨다고 얘기하자, m 또한 본인 부모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었다. 각자 다른 부모와 각자 다르게 큰 우리들. 그리고 어찌 됐건 부모님의 행동과 잔소리들은 다 하나의 사랑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들.


   집에 오니 어둠 속에 만두가 혼자 있었다. 만두 화장실을 치워주고 사료를 주고 물을 갈아주고 씻었다. 잠이 오지 않아 냉장고에 있던 위스키에 아이스티를 타서 먹었다.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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