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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Dec 02. 2023

모든 게 쉽지 않은 날들

3부 EP13. 새로운 정신과

   기존에 청주에서 처방받아서 먹던 약은 잠을 잘 들게 해주는 대신에 아침에 잠에서 못 깨어나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조언대로 3주 정도 약을 끊어보았더니, 아침에 잘 일어나는 대신 새벽 2시가 넘도록 불면에 시달렸다. 기본 텐션도 점점 떨어져서 무엇을 해도 즐거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제주에 있는 정신과를 찾아보았다. 동네에는 정신과가 꽤 많았는데, 그중 가깝고 후기가 좋은 한 군데를 골라 예약을 했다. 그러나 어떤 선생님일지는 만나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3시에 예약을 하고 미리 가서 대기를 했다. 조금 기다리니 간호사가 간단한 심리검사 체크를 했다. 종이에 체크하고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서술했다. 나는 무기력과 불면, 자살충동이 불편하다고 기재했다.

   의사 선생님은 중년 남자로 검사 결과를 넘겨보며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다. 직업, 가족상황, 증상, 먹던 약 등. 상당히 분석적인 느낌의 의사 선생님은 환자 말을 잘 끊고 자기 말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화가 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참고 진료에 임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일반적인 우울증 환자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무엇이 다르냐고 물어보니, 우울증 환자들은 대개 너처럼 목소리가 크거나 말이 많지 않다고 한다. 나는 웃으며 직업병이 아닐까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소견서와 함께 이제까지 먹었던 약의 목록과 부작용에 대해 적어온 것을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보시더니 직전에 먹던 약을 주되, 아침에 잠이 못 깨는 것을 막기 위해 둘로 나누어 아침, 저녁으로 복용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잠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수면제를 쓰자며 졸피뎀을 처방해 주셨다.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던 졸피뎀. 부디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내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고 했다. 십 년을 일하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에 와서 다소 현명하지 못한 공방이란 것을 차린 이유가 궁금하다고 하셨다. 나는 또다시 약간 불쾌해졌다. 일을 계속했다면 난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죽는 걸 피하려고 그만둔 것이야말로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을까? 저 사람은 내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단지 철밥통 같은 직장을 그만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현명하지 않다고 결단 내리고 있네.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병원에 온 목적이 의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성질을 돋우면 그때는 얘기를 해야지,라고 결심하고, 의사 선생님에게는 그 이유를 다음 주에 내원해서 알려드린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약반응을 보기 위해 일주일 후에 다시 보기로 했다. 예약을 잡고 약을 타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잠들기 전, 저녁약을 먹었다. 졸피뎀은 반응이 빠르므로 자기 직전에 먹으라고 되어 있었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아침 8시 40분이었다. 새벽 5시쯤 눈을 떠서 시간만 확인하고 다시 잔 것 외에는 깨지 않았다. 심지어 매일 새벽마다 가던 화장실도 가지 않은 것이었다. 꿈은 꿨으나 기억나지 않았고 잠에 취해서 영원히 자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알람을 끄고 일어나 밥과 아침약을 먹고 출근 준비를 했다.

   밤에 잠드는 것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수월해졌고, 점심 이후에는 약을 먹으면 늘 그랬듯 무기력과 몽롱함이 시작되었다. 공방 수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에 시달렸다. 한동안 활발히 진행했던 공모전과 이모티콘 제작, 동화책 제작은 약을 먹기 시작함과 동시에 중단되었다. 자살 충동과 우울, 불안은 조금 더 심해졌다. 공방을 개업한 이래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증상들이다. 


   일주일 후.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나는 일주일간 좋아진 점과 안 좋아진 점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졸피뎀이 효과는 좋지만, 매우 위험한 약물이라 빼주셨으면 한다고도 요청했다. 의사 선생님 역시 졸피뎀을 오래 쓸 생각은 없다며, 추석 전까지 한 달 정도만 복용해 보자고 하셨다. 대략 한 달 치의 약을 처방받아서 병원을 나왔다.

아침, 저녁으로 빼놓지 않고 약을 복용하고는 있지만, 크게 좋아진 점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게 무기력하고 몽롱한 나머지 자살충동마저도 희뿌연 연기에 가려져 심한 충동까지는 가지 않게 해 준다. 하품이 끊임없이 나오고 아무것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 기분. 퇴근하고 나면 강을 만나는 것조차 엄두가 안 나서 집에 처박혀 가만히 누워만 있다. 식욕도 갑자기 떨어져서 가뜩이나 대충 챙겨 먹던 밥을 더 안 먹게 되었다. 차라리 약을 먹지 않고 순간적으로 너무 힘들 때만 비상약처럼 복용하는 걸 말씀드려 봐야겠다. 졸피뎀은 수많은 부작용 사례도 그렇고, 수면 중 이상행동 보고가 많아 너무 무서워서 먹지 않고 있다. 가급적 먹지 않고 불면이 정말 심한 날에만 먹도록 해야겠다. 


   지금까지 꽤 여러 곳의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복용해 본 결과, 우울증 약은 거의 백 프로의 확률로 무기력이라는 부작용이 따르는 것 같다. 사업을 막 시작해서 부지런히 발로 뛰어도 모자랄 상황인 나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그래도 정신과 약은 꾸준히 2주 이상 복용해야 효과가 발현된다고 하니 일단 받아온 한 달 치의 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봐야겠다. 정말, 모든 게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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