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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Dec 16. 2023

밤새도록

3부 EP15. 보드게임 광인들에 대하여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 셋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 바로 추석이 되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동생은 기차를 타고 엄마가 계신 울산으로 모였다. 대학교에 강사로 들어간 동생은 집에 오자마자 매우 지쳐 있었다. 원래 명절이나 특별한 날 본가에 오면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데, 친구들도 다들 사업을 하거나 회사에 다니게 되자 절친들과 예전처럼 모이는 것은 어렵게 되었는지 밤이 되어도 외박을 하지 않았다. 부쩍 우리 둘 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예쁜 카페에 나가서 수다를 떨다 밤에 들어왔다. 씻고 셋이 안방에 모두 모이자, 늘 그랬듯 보드게임이 시작되었다. 우리 셋은 아주 오래전부터 보드게임에 목숨을 거는 가족이다. 어릴 때에는 윷놀이로 시작해서 부르마불로 이어지는 코스를 거의 밤새도록 즐기고는 했다. 미취학일 때의 어린 동생은 굉장히 승부욕이 강해서 윷놀이에서 거의 이길 뻔했다가 말이 모두 잡히자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도 있다(우린 이걸 아직까지도 놀려먹는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보드게임 열광은 끝나지 않아서 우리는 스플랜더, 우노, 초밥왕, 로보77같은 보드게임을 하나씩 엄마에게 선보였다. 엄마는 나이에 비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습득력이 빠르셔서 규칙을 잘 따라오셨다. 오히려 우리가 엄마에게 질 때도 꽤 많다. 대개 마지막 승부사는 동생 몫으로, 항상 동생이 막판을 하자고 제안하고, 기나긴 승부 끝에 본인이 이기고 나면 기나긴 보드게임 시간이 종료되고는 한다.


   이번에는 엄마와 동생에게 소개할 새로운 게임을 가져왔다. 첫 번째 보드게임은 '스틱스택'이라는 막대기 게임이다. 원숭이를 나무 위에 올리는 게임과 비슷한데, 용수철이 달려서 휘청거리는 판 위에 색깔이 칠해진 막대를 서로 같은 색깔만 맞닿도록 해서 걸쳐 놓는 게임이다. 서로 돌아가면서 막대기를 올리다가, 막대기들이 균형을 잃고 우르르 쏟아지면 지게 된다. 우리는 한참 이 게임을 하고 놀다가, 게임 규칙을 바꿔서 한 사람이 최대 몇 개까지 올릴 수 있는지 기록을 재보았다. 나와 동생은 이상한 구석에서 승부욕이 있어서 정말이지 심혈을 기울여 막대기를 올렸다. 결국 용수철이 구부러지는 시점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 둘 다 이것이 굉장히 잘 만들어진 게임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휘청휘청..!

   

두 번째 보드게임은 '젝스님트'라는 나름 유명한 게임이다. 보라색깔 숫자가 적힌 일반 카드와, 그보다 화려한 연두, 빨강 카드 등이 있는데, 화려한 카드가 좋은 카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게임은 카드를 먹게 되면 벌점이 쌓이는 게임인데, 색깔이 화려한 카드일수록 벌점이 높기 때문이다. 카드를 놓을 때 서로 눈치를 보며 머리를 굴려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심장이 쫄깃해지는 게임이다. 카드를 숫자 오름차순으로 놓다가 여섯 번째 자리에 놓게 되는 사람이 놓아두었던 카드 벌점을 전부 먹는데, 서로 이간질하고 눈치게임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는 삼일 연속을 거의 새벽 세, 네시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빨간 카드는 벌점 다섯 개!!!

   추석 연휴는 보드게임과 함께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중 하루는 중학교 동창들 두 명을 만나서 점심을 먹었다. 그들은 내가 퇴사를 하고 미술 공방을 차린 것을 sns를 통해 눈치는 채고 있었다며 축하한다고 응원을 해 주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쌓인 이야기가 많았다. 우리는 밥을 먹고 카페를 두 군데나 돌며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한 친구는 공방 방명록으로 쓰라며 예쁜 동물 포스트잇과 필기도구 등을 잔뜩 쥐어 주었다. 참, 고마운 날이었다.


   연휴가 끝나고 제주로 돌아오니 다음 날 손님 여섯 명이 예약되어 있었다. 소중한 가족.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가족. 아픈 손가락인 줄 알았지만, 아주 멋진 손가락이었던 남동생. 너무나 사랑하고 안타까운 엄마. 다시 그들과 떨어져서 또 많은 날들을 혼자 이겨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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