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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Dec 23. 2023

밤이 두렵지 않게 되다

3부 EP16. 불면증의 엄청난 호전

   제주 정신과에서 받은 약을 거의 한 달간 복용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불면증 때문에 졸피뎀을 처방받은 나는 삼일 정도 그 약을 먹어본 후, 너무 두려워졌다. 일단 먹은 직후 거의 30분 내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딱 뜨면 시간이 꽤 흘러 있는데, 잠을 못 깨서 흐물거리지도 않고 그냥 명확하게 눈이 떠진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효과는 매우 좋아 보인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수면 이상행동이 있다고 해서 먹는 게 너무 꺼려졌다. 

   수면 이상행동은 자는 동안 걷거나, 운전을 하는 등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경우에 따라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그리고 잠을 잘 자고 잘 일어나긴 하지만, 낮이 되면 몽롱하고 피곤함이 더 심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내성과 의존성이다. 지금도 술에 대해 의존성이 높은 내가 약물에까지 의존을 하게 되면 정말 안 될 것 같았다. 


   약을 먹으며 걱정 속에서 잠드는 걸 거부하던 나는,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얻고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십 년간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했던 나. 전날에 늦게 자게 되면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심한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 때문에 늘 잠에 대한 불안 속에서 살던 나. 저녁을 먹자마자 7시나 8시부터 침대에 누워있었던 나라는 사람. 퇴사를 했어도 다음 날에 지장이 없도록 잠을 잘 자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직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난 이제 그만뒀어. 내가 오늘 밤 잠이 안 와서 늦게 자면, 그냥 내일 공방에서 조금 피곤할 뿐이야. 손님이 없다면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다구. 잠을 못 잔다고 그때처럼 업무에 치명적이지 않아. 잠이 오면 자고, 오지 않으면 밤을 새도 돼.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어.


   생각의 전환은 놀라웠다. 불안에 떨며 9시부터 누워있었던 나는 남들처럼 11시, 12시에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고, 늦게 잔다고 해서 생각보다 아침에 피곤하지도 않았다. 늦게 잔다고 해서 하루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잠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불면증의 원인은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다. 내 지인 디자이너 B는 혼자 잠들다가 죽을까봐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엄마는 나이가 드심에 따라 잠이 없어져서 새벽 1시, 2시가 되도록 잠드시지 못한다. 

   나의 케이스는 다음 날에 대한 강박과 두려움을 내려놓자 거의 완벽할 정도로 갑자기 호전되었다. 물론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매일매일을 잠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겠지. 약 복용도 도움이 되지만, 나 같은 심리적인 경우에는 생각의 전환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갖가지 불안에 시달리며 악몽을 꾸고, 새벽에 잠을 깬다. 이것 또한 상황의 변화와 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면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오늘도 힘겹게 버텨내 보자고 자신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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