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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20. 2021

작정하고 덤비지마라

늘 1일부터 시작하는 당신에게


어떤 것을 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

정말 큰 꿈과 환상을 가득 안고 시작할 때가 있었다.

할려면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

그 욕심을 버리기가 참 어려웠다.


누군가는 말한다.

미친듯이 하라고.

열정적으로 하라고.

내일 죽을 것 처럼 최선을 다하라고.


맞다.

얼마나 멋진삶인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해서 

다 쏟아 붓는 열정.



나도 그 열정이 참 부러웠다.

나도 그 열정을 쏟아 붓고 싶었다.

그런데 그 열정을 쏟아부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늘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배가 불러서 그런거라고.

아쉬운게 없어서 그런거라고.


맞다.

그럴지도 모른다.

살만하기 때문에 뒷걸음칠 여유도 있는 거겠지.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는 

나를 비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상황이 다른건 

너무나 당연하다.


중요한건 두려움에 뒷걸음 치는 를

나조차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작정하고 덤비라는 말이,

최선을 다하라는 그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다.


'미친듯이 해야겠다' 마음 먹는 순간

두려움에 '주저앉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몸이 굳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두려움에 늘 회피하고 살았던 사람에게는

미친듯이, 작정하고 하는 단어가

정말 무거운 짐 처럼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없음에 좌절하고, 

또 그 좌절이 결국 내 근성의 문제라는 

죄책감에 때문에

원래 하던 것과도 결국 멀어지곤 한다.



회피가 주 생존수단이였던 사람에게는

그 미친듯이, 작정해서 무얼 할 만큼의

삶의 에너지가 없다.

오히려 마음 먹는 순간부터

안된다는 스토리에 짖눌려

무의식적으로 안될 이유만을 찾기 시작한다.


'하고 싶어 '

'하고 싶어'

라는 말 뒤에 따라오는

'할 수 없어'라는 거대한 파도가 

나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눈에 보이는 파도라면 피하기라도 할 텐데,

본질을 확인할 수 없는 파도는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고,

그 두려움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그저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 뿐이였다.



내적인 성장을 하면서

얼마나 내가 '하고 싶다'라는 말 뒤에 숨어서

'하지 않는 선택'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실패하는 사람의 초라함을 느끼지 않으려고,

아니 실패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할 수 있는 척, 하고 싶은 척 했지만,

결국 그 어떤 시도도 해보지 않고서

'하고 싶다'라는 말 뒤에 숨었다.


작정하고 덤비는 순간

내가 그린 완벽한 그림에 갇혀서

한 발자국도 내가 나아갈 수가 없는 내가 있었다.


내가 그린 완벽한 그림에 미치지 못하는 

그 순간의 수치심이 너무 버거워

늘 고비 고비를 넘지 못한채

주저 앉았었다.



수많은 시행 착오 끝에

내가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깨닫고 난 다음부터

나는 나에게 '미친듯이', '최선을 다해서',

'완벽하게' 라는 단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의 그 최선을

'사력을 다해서'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의미로 사용했다.



나를 독려하고 다독이기 위해 사용했던 

'최선'이라는 단어.

언젠가 부터 그 '최선'이라는 단어가 

나를 살리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사력을 다하지 못해

내 자신이 너무 밉고 초라할 때가 있었는데,

이 '최선'이라는 단어를 알고나서부터는

그런 나를 더이상 책망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마다 다 자기 그릇이 다르고,

사람마다 자신의 삶의 방식은 다 다르다.

내가 하는 최선의 그릇과 

다른 사람이 하는 최선의 그릇이 다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누군가는 미친듯이 사력을 다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삶의 방식이였을것이고,

또 누군가에는 미친듯이 회피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삶의 방식이 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와 같지 않다고 해서

나를 비난할 이유가 전혀 없다.



미친듯이 회피하는 사람에게는

미친듯이, 사력을 다해 무언가를 해낼 만큼의

에너지가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에너지를 축척해서 나아갈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회피하는 사람에게 

'꾸준히'하는 것만큼

힘든것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그 꾸준히의 힘은 

나를 비난하지 않고,

나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냥 조금 부족해도, 모나도, 완벽하지 않아도

그런 나를 내가 이해해주며

'존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때론 보고도 못 본척이 하는 강심장이 필요하다.

때론 부족해도 모르는 척,

그냥 내 갈길을 가는 배짱도 필요하다.


모나도, 부족해도,

내 성에 차지 않아도 그냥 꾸준히 해보기를 바란다.



3일 하고 무너졌을 때 그 다음날을 

다시 1일로 세지마라.

완벽하지 않아도

쫌 찝찝해도

그냥 그 다음날을 4일로 다시 세어가며 시작해야 한다.


뻔뻔한 것이 아니다.

4일로 날짜를 세어간다는 것은

나의 어설픔과 실패를 포용하며 나아 갈 수있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완벽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울타리 안에서

도망가지 말고

그렇게 진득히 버텨보는 것도 성장이고,

정말 의미있는 시간임을 인정해야 한다.


성과(결과)만이 

나를 반짝 반짝 빛내주는 것이 아님을.

그러니 좀 어설퍼도 

진득히 버텨보기를.



돌이켜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짓이

정말 말그대로 헛짓인 것 같아서 

중간중간 항복만세를 부르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나와보니

그냥 '무너지고 싶은' 순간의 기분이였고,

결국 내가 할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행동이였을 뿐이였다.


그리고 사실은 '헛짓' 같아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 순간 정말 다시 없을만큼 휼륭했음이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작정하고 덤비지마라.

대충해라.

그대신 존버하자.


인생의 진리가 뭐 별거 있을까 싶다.

내가 판단하는 옳고 그름의 대부분은

누군가가 나에게 심어준 신념일 뿐,

언제나 자신의 형편에 맞는 삶의 방식으로

나를 먼저 먼저 이해해주고 다독여주길 바란다.


미친듯이 열정을 쏟아붓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가치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언제나 기억하길.

이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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