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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Apr 11. 2020

006. 예민한 아이는 선천적으로 굿잠이 어렵습니다

신체적 예민함 이해(2)

 

“엄마, 깜짝 놀랐어. 눈을 감으니까 잠이 오더라. 그런데 눈 뜨니까 아침이었어!”

최근 아들이 무척 신기했는지 몹시 흥분해서 한 말입니다. 아들은 전날 밤 9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들었으며, 밤새 뒤척이지 않고 통나무처럼 아침 8시까지 푹 잤습니다. 때는 만 6세 6개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봄지기>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충분히 아실 겁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잠이 없고, 잠들기도 힘들어하며,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고, 푹 자지도 않으며, 혹여 자다가 중간에 깨면 밤을 새기도 하는 등, 굿잠의 조건이 5조 5억 개는 될 것 같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말이죠. 제 아들도 자신의 그러함을 6년 넘게 경험하고 있기에 푹 자고 일어난 자신이 신기했나 봅니다.


요즘 육아서는 아기의 수면・식사・배변에 대해서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아무래도 식사와 수면은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도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육아서의 수면 파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성장에 필요한 연령별 적정 수면 시간 외에도, 이상하게 다음의 두 가지 기대로 가득합니다.

첫째, 아이가 혼자서 일찍 잠들어 밤새도록 푹 잠으로써 엄마에게 치유와 자유의 시간을 준다. 

둘째, 어려서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어줘야, 어른이 되어서도 알찬 하루를 보내고 끝내는 목표한 성공을 이루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예민한 신체를 타고난 사람은 굿잠도 어렵도록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육아서에 입각해서 수면교육에 임하면, ‘이 아이는 잠까지 안 자서 나를 괴롭게 하네!’ 혹은 ‘내가 아이 수면교육을 제대로 안 시켜서 애가 안 크나?’로부터 ‘잠버릇을 잘못 들여서 애가 부지런한 사람이 못되면, 다 내 탓이야’와 같이 파국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특히 90년 대 이전에 출생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집단 최면 아래 성장했고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일찍 자고 새벽부터 일어나 알찬 하루를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아침형 인간>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으니, 이 파국적인 결론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학자들이 연구한 바로는, 이 사람들은 우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편도체가 민감하다고 합니다. 사람의 수면은 깊은 수면과 얕은 수면을 반복합니다. 얕은 수면 단계(우리가 흔히 아는 램 REM 수면 단계죠)는 안구와 뇌가 활동을 하는, 꿈을 꾸는 단계입니다. 그러다 깊은 수면으로 접어들면 굿잠이 되는 거죠. 그런데 예민하게 타고난 사람들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뇌가 계속 활발하게 활동을 하기 때문에 깊은 수면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꿈을 많이 꿉니다. 들려오는 소리도 다 듣습니다. 잠귀가 밝죠.


거기다 편도체가 민감하면, 얕은 수면 단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나 불빛에 강렬한 신체적 반응이 일어납니다. 깜짝 놀라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면서 깨고는 다시 진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신도 말짱해져 있기 십상입니다. 이런 식으로 새벽 2시에 잠을 깨면, 다시 잠들기가 너무 힘들어 결국은 밤을 새우게 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편도체는 뇌의 일부로 생존에 필요한 경험을 감정과 연결시켜 효율적으로 기억하게 합니다. 특히 공포, 공격성, 불안을 핵심적으로 담당합니다. 먼 옛날 인류는 포식자로부터 살아남는 게 생존을 위한 최대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뇌는 포식자로 보이는 동물에 맞닥뜨리면 최대한 빨리 알아차리고 대응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듭니다. 포식자인 동물에 대한 경험을 공포라는 감정과 짝지어서 강렬하게 기억하고, 유사한 동물과 마주치면 기억에 있는 정보와 얼른 대조하여 포식자와 일치하면 공포라는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면서 신체적으로는 도망이든 공격이든 즉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긴장상태로 돌입하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편도체가 하는 일입니다(또 참고로, 일부 사교육계에서는 공부의 내용에 좋은 감정을 익혀서 기억하게 하는 방법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우리가 타고난 신체적 특징은 과거의 조상들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특징들입니다. 그래서 현재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예민하게 태어나는 것도 그렇습니다. 먼 옛날 동굴에서 무리 지어 살던 때라면, 모두 잠든 사이에 야행성 포식자가 침입을 해도 HSP가 알아차렸을 테고, 그러면 그 무리는 그렇지 않은 무리에 비해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치안이 우수하고, 안전하게 생산된 음식을 먹으며, 체계화된 거대한 조직사회에서 비슷한 일과를 규칙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혹시 모를 위험을 예민하게 감지하여 살아남기보다는 안전한 사회 시스템에 빠르게 적응하고 숙달하는 편이 생존에 더 유리한 특징이 되었죠. 이를테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각종 자기 계발을 알차게 하며 성공에 도움이 되는 스펙을 쌓는 거죠.


<출처:네이버 블로그 jyjzx> 겨우 잠들었다 깨기라도 하면 날밤을 새곤 하지요.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밤에 빨리 잠들지 못하고, 굿잠이 어렵고,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든 신체적인 원인을 알았으니, 이 조건을 활용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되니까 다행입니다. 벌써부터 “잠 안 자는 너 때문에 이 엄마가 쉴 수가 없다.”며 엉뚱하게 아이를 구박하지 않게 됐으며, 사실 가장 힘든 건 잠 못 드는 아이 자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아이는 굿잠을 이루고, 나는 치유와 자유의 시간을 쟁취할 수 있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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