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집을 고를 때 사람들과 다른 기준을 가진다.
나는 적당히 조용한 곳을 원한다.
너무 찢어지고 시끄러운 음악은, 나의 생각을 방해한다.
나는 인테리어에 집착한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공간, 벽지의 질감과 조명의 배치, 컵의 무게까지 내 취향은 고요한 완성도를 향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좋아하던 술집들은 하나둘 사라진다.
문을 닫고, 사라지고, 기억 속에만 남는다.
나는 늘 마지막 손님이다.
가끔은 내가 망하게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가 왜 그런 곳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가성비를 말하고, 분위기를 말하고, 인스타 감성을 말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분위기는 소란함 속의 흥이 아니라, 침묵 속의 응시다.
나는 알게 됐다.
대중성을 모른다는 것은, 사회에서 고립된다는 것임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수익이 나지 않는다.
높은 인테리어, 낮은 음악, 적은 테이블.
그런 공간은 존재하기 어렵다.
내 취향은 아름답지만, 수익구조에 적대적이다.
그래서 나는 외톨이다.
내가 가는 곳은 오래가지 못하고,
내 감각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취향은 고독을 낳는다.
대중은 익숙함을 원한다.
화려한 간판, 북적거리는 소음, 할인 이벤트.
그 속에는 “함께 있다”는 안도감이 있다.
나는 반대편에 서 있다.
낮은 조도, 정제된 소리, 천천히 놓인 물병.
그 속에는 혼자 있어도 되는 자의 평온이 있다.
그러나 사회는 대개 다수를 택한다.
소수의 감각은
묵음으로 사라진다.
결국, 나는 배워야 했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도, 대중이 찾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이해받을 수 없다.
대중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름다움은 짧고, 외로움은 길다.
그래서 나는 타협을 고민한다.
내 감각을 포기하지 않되,
그 감각을 전달할 언어를 배우고 싶다.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 취향을 번역하고 싶다.
조용한 술집은 사라졌지만,
그 감각을 기억하는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미감과 대중성 사이의 다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