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든,
상징으로서 기능하든,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상관없이.
왜냐하면 신은,
‘있다’기보다는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우리의 지식이 닿지 못하는 자리,
논리가 꿰뚫지 못하는 경계,
마음이 버틸 수 없는 고통을
잠시 위탁할 수 있는 ‘틈’이었다.
신이 있는 세상에서 인간은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할 수 있었고,
삶의 모순과 불합리를
의미라는 이름으로 보듬을 수 있었다.
신은 실재이기보다,
인간의 상처를 담는 그릇이었다.
문제는 지금이다.
신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돈’이 대신하고 있다.
돈은 모든 것을 수치로 바꾸고,
사람의 가치는 소득과 소비로 측정되며,
삶의 성취는 신의 축복이 아닌,
시장이라는 신 앞의 성과로 환원된다.
돈은 신보다 더 구체적이고,
신보다 더 잔인하며,
신보다 더 조용히 인간을 지배한다.
신이 절대자일 때
인간은 거기 기대어 윤리, 질서, 의미를 정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가 사라진 지금,
우리는 상대적인 모든 것들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돈이 옳은가?
인기 있는 것이 진실인가?
성공한 사람이 정의로운가?
신이 부재한 공간은
그 자체로 가치 판단의 공백을 낳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묻게 된다.
신은 존재하는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신이 존재해야만 하는가? 이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신의 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병리는
매일같이 체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
신은 존재해야만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든, 붓다이든,
창조주든, 우주적 지성이든,
혹은 윤리, 사랑, 침묵의 형태로든
그 ‘있어야 함’의 구조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신은 어떤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상실하지 말아야 할 마음의 형상이다.
신은 우리가 되찾아야 할 ‘틀’,
혹은 우리가 비워야 할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