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깊이의 그릇

by 신성규

왜 나는 사람들이 감동했다는 글을 읽을 때,

오히려 이상한 억지스러움을 느끼는가?

왜 그토록 많은 글이

나에게는 깃털처럼 가볍고,

고통이 빠진 기획처럼 보이는가?


혹시,

내가 이상한가?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이 본 것일까?


많은 글은 슬픔을 말하지만,

나는 그 글에서 실제 고통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슬픔을 설명하고, 구조화하고, 심지어 연출하지만

그 어디에도 슬픔이 고요히 말없이 머무는 공간은 없다.


나는 직감적으로 안다.

이 문장은 고통의 가장자리도 지나지 않았다.

그저 슬픔이라는 테마를 빌려, 감정을 환기시키려는 구조다.

그래서 나는 감동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감동적인 언어를 소비한다.

그러나 그 감동 속엔 진짜 감정의 무게가 없다.


그들은 정해진 구조 속에서 말한다.


서사적 클리셰,

예상 가능한 전개,

적절히 비극적인 비유,

감성적 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상품처럼 배합된다.

슬픔은 레시피가 되고,

위로는 마케팅이 되며,

고통은 장식이 된다.


그래서 나는 직감적으로 감지한다.


그들이 말하는 고통은 지나가지 않은 고통이고,

그들이 말하는 감동은 기획된 감정의 동의서다.

읽는 나는 그 문장이 울리기도 전에

그 안에 없는 것을 먼저 본다.


진짜 감동을 전하려면

구조를 흔들거나,

고통을 말하는 대신, 고통을 견디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그 고통을 참는 긴 침묵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은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대신 감정을 빠르게 소비 가능한 형식으로 포장한다.

언어의 질감은 얕고,

문장의 호흡은 진폭이 없으며,

문장마다 익숙한 수사만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그 글들을 읽을 때마다

문장이 감정을 전달하지 않고,

감정을 모방하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종종 묻는다.

사람들이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감정을 느끼고도 그것을 담아낼 언어가 부족한 걸까?


어쩌면 둘 다일지 모른다.

고통을 통과하지 않았기에,

그 고통을 말로 꺼낼 수 없고 그 고통을 느꼈더라도,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구조적 감각이 없기에

결국 그들의 언어는 얇고,

구조는 단순하며,

감정은 감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언어의 실패 앞에 멈춰 선다.


진짜 감동은 말이 많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조용하고, 느리며, 밀도 있다.

화려한 수사도 없고,

불필요한 동정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그 무게 그대로,

한 문장이 가만히 놓여 있다.


그런 문장은 읽는 이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말 없이 감정을 흔든다.


나는 감동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감동은 쉽게 오염되기 때문이다.

의도된 감동,

가공된 눈물,

기획된 문장들 속에서

나는 ‘느껴야 한다는 강요’를 느낀다.


그러나 나는,

감동보다 진실을 원한다.

감정을 설득하기보다,

감정을 허용하는 문장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파도가 아니라 심연이고,

수식이 아니라 진실이고,

감정의 설득이 아니라 감정의 맨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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