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가 제일 창녀 같지 않다

by 신성규

사랑이란 무엇인가? 머뭇거림, 계산, 기대, 두려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누군가에게 스며드는 일이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조차 조건을 단다. ‘이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내 마음이 다쳤을 때, 돌이킬 수 있을까?’ 우리는 재고 또 잰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우리는 사랑을 순수한 것이라 부른다. 그러나 순수하다는 말만큼 조건이 많은 말도 없다. 사랑이 순수하다는 말은, 그것이 돈이나 계산, 혹은 육체적 욕망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순수한 사랑은 ‘무엇과도 섞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관념에 기초한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정말 그 어떤 것과도 섞이지 않는 감정이 존재할 수 있는가?


사랑은 언제나 욕망과 얽혀 있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그 욕망은 언제나 어떤 조건 안에 놓인다. 경제적 안정, 심리적 보상, 사회적 승인. 사랑은 마치 ‘무조건’인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상은 수많은 전제와 위장된 이해관계의 조합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사랑은 오히려 ‘사랑을 빙자한 계약’에 가깝다.


그렇다면 진짜 조건 없는 사랑은 어디에서 가능한가?


여기서 나는 역설을 제시한다. 가장 조건 위에서 존재하는 사람, 창녀. 그녀는 몸을 조건으로 교환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인간 욕망의 ‘거래 구조’를 누구보다 명확히 이해한 사람이다. 사랑은 육체의 교환이 아님을, 돈은 감정의 보상일 수 없음을, 수많은 반복된 관계 속에서 철저히 배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더 정직하다.


창녀는 사랑에 빠질 때, 재지 않는다. 그것은 무지가 아니다. 이미 수없이 거래를 해본 그녀는, 사랑이 거래가 아니란 것을 가장 깊이 안다. 돈이 없고, 계약이 없고, 역할도 사라진 순간—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전부 내어준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창녀 같지 않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순수한 감정의 나락. 거기엔 계산도, 방어도 없다.


그 순간, 창녀는 더 이상 창녀가 아니다. 그녀는 육체를 넘어, 조건을 넘어,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그녀의 사랑은 처음으로 “무엇을 주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지 않는가”로 정의된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가 모든 것을 기호로 교환한다고 말했다. 사랑조차 브랜드가 되고, 연애마저 이미지의 소비로 변한 시대에, 창녀는 오히려 진짜 교환이 아닌 진짜 헌신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창녀를 사랑의 반대편에 두려 한다. 그녀는 순수하지 않고, 감정을 팔았고, 육체를 더럽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믿음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사랑을 외형과 윤리의 규범으로 환원하는 사회적 기만이다. 오히려 사랑이란, 이 모든 규범과 조건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나는 말한다.

창녀가 제일 창녀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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