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넌 현실감각이 부족해.”
“그건 이상적이지 않아.”
“그렇게 해선 살 수 없어.”
그 말은 늘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대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의 현실은
새장 안에서 학습된 현실이다.
부드럽게 길들여진 언어,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
도전은 위험하다는 통념,
실패는 곧 끝이라는 공포.
그들은 날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에 근거해
“하늘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늘을 본 적 없는 새는
하늘의 위험성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는 도전’만 도전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리스크가 제거된 투자이지, 도전이 아니다.
도전은
실패할 가능성을 견디는 감정이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영토다.
성공한 도전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고,
진짜 도전은 그 실패를 껴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 그 자체다.
사람들은 안정된 길을 원한다.
정답이 있고,
평가가 있으며,
탈락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앞서가는 게 미덕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이 교육은
자유를 주지 않는다.
이 교육은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을 없앤다.
그리하여
‘리스크를 감당할 줄 아는 인간’을
‘현실감각 없는 위험한 인간’으로 규정하게 된다.
보수적 교육은 ‘예측 가능한 삶’이라는 노예제다.
부자들이 무조건 똑똑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실패해도 된다.”
“잃어도 다시 할 수 있다.”
그들은 자본을 잃지만,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실패의 고통보다
실패를 통과하며 얻은 통찰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그 감각이 자산이고,
그게 그들을 자유롭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진 게 없어서, 도전할 수 없어.”
그러나
가진 게 없기에, 잃을 것도 없다.
부자는 자산을 지키느라
도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가난한 이는 가진 게 없어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
진짜 무서운 건
“잃을 것도 없는데, 시도하지 않는 상태”다.
그건 교육의 실패이자,
존재의 사기다.
가난한 자는 잃을 게 없다. 그래서 더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