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지능이 높을수록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람들과 더 잘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일 수 있다.
지능이 높을수록 세계관은 더 독특해지고,
그 독특함은 곧 고립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정보를 나눌 수 있다.
지식을 교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관은 쉽게 공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안다-모른다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어떤 구조로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같은 언어로 말하고,
같은 음악을 하더라도,
그들의 정신이 구성한 세계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조화와 균형 속에서 천재성을 드러낸 자였고,
베토벤은
격정과 반역으로 세계를 다시 짠 사람이었다.
그들이 대화했다면,
공감보다 차이를 깨닫는 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고지능자는 세계의 구조 자체를 새로이 짜는 사람들이다.
그 말은 곧,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고지능자들은 보통의 사고 틀에 갇히지 않는다.
그들은 빠르게, 깊이 있게, 독립적으로 사고한다.
하지만 그만큼 서로 다른 ‘우주’를 가진다.
그들은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른 구조로 받아들이며,
같은 질문에 대해
전혀 다른 논리 구조와 가치 체계로 접근한다.
즉, 고지능자들끼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지능은 연결보다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연결의 가능성은 있다.
그 열쇠는 포용성이다.
포용성이란
내 세계관의 절대성을 의심하고,
타인의 우주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차이를 이해하려는 감정적 노력이다.
고지능자에게 진정 중요한 건
IQ가 아니라
타인의 세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
즉 ‘여백의 지능’이다.
그 여백이 있어야만
서로 다른 별을 가진 자들이
조심스럽게 궤도를 맞추고,
잠시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지능은 우리를 고립시킨다.
그러나 포용은 우리를 연결시킨다.
진정한 고지능자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일 뿐 아니라,
타인의 세계에 다리를 놓을 줄 아는 자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을 기꺼이 이해하려 한다면,
그들은 침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