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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숨겨진 서사

by 신성규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을

‘일제를 몰아낸 정의의 투쟁’으로만 이해한다.

역사 교과서에선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

‘나쁜 일본’, ‘선한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통일을 향한 하나의 민족적 의지’.


하지만 그것은

반쪽짜리 서사이자,

불편한 진실을 감춘 정치적 설계였다.

진짜 싸움은,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

그것은 해방 이후를 준비하는 자들의 전쟁,

즉, 권력 분할을 둘러싼 내부 전쟁이었다.


한반도의 독립운동은 두 개의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서울·경기 출신의 엘리트 중심, 문화운동·외교 중심 세력,

다른 하나는 만주·연해주·중국 대륙에서 활동한 무장 독립군 중심의 이북 계열 세력이다.


서울은 조선 말기부터

양반·지주·관료 중심의 기득권층이 포진해 있던 공간이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도 일종의 정치적 생존 전략으로

신협·친일·온건 개화파로 전환하며 사회적 입지를 유지했다.


반면,

만주·연해주·북간도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던 세력은

토지를 빼앗기고, 가족을 잃고, 조국에서 쫓겨난 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념적으로 급진적일 수밖에 없었고,

독립운동을 ‘해방’ 그 자체가 아닌,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는 혁명적 기회로 인식했다.


서울 기득권 세력에게

독립은 ‘회복’이자 ‘질서의 복구’였다.

즉, 조선이라는 틀 안에서의 기득권의 복원이었다.


반면, 북의 망명자들에겐

독립은 기존의 사회 질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주체로 권력을 쟁취할 기회였다.


이 간극은 해방 직후

미군정과 소련군정의 분단 통치 속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김구는 남도 북도 아닌

민족 전체를 품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념보다 공동체를 중시했고,

자유보다 통합을 바랐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서울 중심 세력에게는 위험했다.

김구가 북과 손잡고

진정한 민족 통합을 추구하는 순간,

서울 중심 권력자들은 권력 기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구는

이념이 아니라,

권력 설계에서 밀려나 죽은 자였다.


해방은 모든 민중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서울은 일제의 권력을 이어받아

그들의 논리를 바꾸어 이어간 자들의 손에 남았고,

만주의 독립군들은

‘이념적 위험’이란 명분으로 배제되었다.


북의 세력들은

소련의 후원을 받아 집권했지만,

그들 역시 자유로운 평등을 실현하지 못한 채

스탈린주의 국가로 고착되었다.


결과적으로 남북 모두에서

진정한 독립운동가들 — 자기 삶을 던지고 피를 흘린 자들 —

은밀히 제거되거나 권력 밖으로 밀려났다.


독립운동은 외세와의 전쟁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해방 이후를 설계할 것인가,

누가 ‘새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인가를 두고 벌인

한국 내부의 권력투쟁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이념의 장막을 걷고,

윤리의 포장을 벗겨낸 뒤에

드러나는 서사 없는 사망들, 이름 없는 배제들을 다시 써야 한다.


그리고 묻자.

누가 죽었는가?

왜 잊혔는가?

우리는 누구의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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