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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 프랑스식 사랑, 네토라레

by 신성규

사랑은 짜장면일까, 탕수육일까?

나는 짜장면을 시키면 탕수육부터 먼저 먹는다.

왜냐하면 짜장면은 내 것이니까.

내 접시에 있고, 누구도 가져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탕수육은 다르다.

공유된 욕망, 노려지는 대상,

바로 그 때문에 더 먼저, 더 많이, 더 급하게 먹게 된다.


이 단순한 식탁 위의 습관은,

사랑과 욕망의 구조를 아주 정확히 보여준다.


프랑스에서는, ‘배신’보다는 ‘변화’를 말한다.

연인의 감정 변화는 숨기지 않는 게 미덕이다.

“요즘 데이트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말은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진실을 서로에게 열어두는 방식이다.


질투는 감정의 적이 아니라,

사랑의 확인 장치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질투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관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내 접시에 담긴 짜장면은 나의 여자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내 식탁 위의 안정된 감정.

반면, 탕수육은 여러 젓가락이 노리는 여자다.

그녀는 인기 있고, 위태롭고,

그 위태로움이 욕망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자기 것’보다

타인의 욕망을 받는 대상에 더 끌린다.

그것은 단순한 미모 때문이 아니라,

경쟁과 상실의 불안이 사랑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네토라레(NTR)’는 일본의 하위문화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자신의 연인이 다른 이에게 빼앗기는 상황을 보며

이상하게 각성하거나 흥분하는 감정 상태를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굴욕이지만,

실은 질투를 통한 감정 재확인,

소유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에 생기는 감정의 격류다.


즉, NTR은 왜곡된 형태이긴 하지만

프랑스식 사랑과 유사한 지점을 갖는다:

사랑의 확인을 배타성이 아닌 유동성에서 찾는 방식.


한국식 결혼은 종종 ‘짜장면만 먹기’다.

배우자와만 함께하고, 다른 접시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정직한가?

실은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탕수육을 그리워하면서도

탕수육을 사랑하는 자신을 죄책감으로 몰아넣는다.


오히려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관계,

질투와 갈망조차 안전하게 꺼내볼 수 있는 관계가

더 지속 가능한 사랑은 아닐까?


결혼을 ‘완전한 독점’이 아닌

상호 투명한 갈망과 감정의 공유 구조로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짜장면도, 탕수육도, 그리고 자신의 식욕까지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


사랑은 독점할 수 없다.

욕망은 감춘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은 식욕과 같다.

억누르면 왜곡되고,

공유하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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