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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여자의 미학

by 신성규

폴 뉴먼은 아내 조앤 우드워드와 평생을 함께했다.

그는 “집에 스테이크가 있는데, 왜 밖에서 햄버거를 먹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충실함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사람들은 그의 윤리적 사랑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나는 뒤집는다.

스테이크만 먹고 평생을 살아야 하나?

왜 우리는 욕망을 ‘배신’이라 부르면서도,

‘갈망’으로부터는 도망치지 못하는가?


스테이크는 완벽한 음식이다.

잘 구워졌고, 비싸며, 고귀하다.

하지만 바로 그 완벽함이 주는 압박감,

“이것 말고는 안 돼”라는 일방적 미학은

때때로 인간의 호기심과 충동을 질식시킨다.


완벽한 사람, 완벽한 사랑, 완벽한 삶.

그런 것들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친다.

우리는 완벽을 사랑하지만, 완벽함 속에서 숨이 막힌다.


햄버거는 싸구려다.

기름지고, 포장되고, 즉각적 쾌락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천박함의 미학이다.

욕망의 세계에선, 때때로 고귀함보다

이 조잡한 정직함이 더 강하게 우리를 유혹한다.


“나쁜 것은 나쁘기 때문에 욕망된다.”

이 파라독스 속에서 인간은 윤리를 이탈하고,

욕망을 통해 자신이 억압해온 또 다른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바람이 아니다.

그건 완벽한 것에 대한 피로,

감정의 무정부 상태에 대한 무의식적 열망이다.

‘완벽한 사람’과의 관계는

때때로 우리가 자유롭게 어지러워질 권리를 박탈한다.


천박한 여자에게도 미학이 있다.

그것은 미묘하게 어긋난 립스틱,

조금은 지나친 향수,

예상 밖의 반응,

모범답안이 아닌 생동감의 미학이다.


폴 뉴먼은 충실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가 모든 남자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충실함은 때때로

자기 욕망을 억제한 결과이고,

그 억제는 늘 진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진실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햄버거도, 와인도, 불량식품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우리는 완벽한 음식만이 아닌, 다양한 맛들로 이루어진 존재다.


사랑은 선택이고, 충실함은 의지이지만,

욕망은 본능이고, 미학은 감각이다.

우리는 모두 고상한 사랑과 불완전한 충동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다.


스테이크는 고귀하다.

그러나 햄버거는 삶의 그림자 같은 위로다.

나는 오늘도 그 사이에서 나를 이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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