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도로 위, 사람들은 착한 얼굴로 악을 행한다.
엑셀을 밟지 않는 것.
자신의 연비를 보호하는 것.
‘합리적 소비자’가 되려는 그 조용한 욕망.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연비 운전이
도시의 시간과 에너지의 흐름을 어떻게 절단하는지를.
연비 운전은 겉보기에 미덕이다.
기름을 아끼고, 탄소를 줄이고, 차를 아끼는 것.
그러나 이 모든 절약은 철저히 개인 중심의 절약이다.
공공의 흐름과 리듬,
도로 위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연비 그래프를 최적화한다.
연비 운전을 하는 자는 손해를 입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목적만 달성한다.
손해를 입는 것은 뒤따르는 수십 대의 차량이며,
그 도로 위의 시간들,
신호 타이밍, 병목구간, 정체, 분노,
그리고 결국에는 더 많은 연료 소비다.
시간의 흐름이 끊긴다.
집단적 이동의 효율이 무너진다.
그들은 연비 운전으로 기름을 아끼지만,
인류의 시간과 공공의 효율을 불태운다.
이것은 단순히 운전 습관이 아니다.
연비 운전은 이기적 시민성의 은유다.
공동체보다는 나,
전체의 흐름보다는 내 리스크 최소화.
이 구조는 금융 시장, 교육 시스템, 출퇴근 시간의 도로 위까지 퍼져 있다.
우리는 결국
자신만 망가지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망가지는 방향으로 달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연비 운전자는
도로의 흐름을 망가뜨리며,
결국 타인의 연비까지 악화시킨다.
정체는 정지와 출발을 반복하게 만들고,
그것은 기름을 더 먹는 메커니즘이다.
자신의 기름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그는 결국 공공의 자원을 소각하고,
그 잿더미 속에서 자신도 질식한다.
운전은 사회적 행위다.
도로는 공공의 신경망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만의 생존이 아닌,
흐름을 위한 배려, 박자감 있는 리듬,
조화로운 합주자가 되어야 한다.
연비는 효율이 아니다.
효율은 전체의 호흡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최적화’라는 이름의 독선을 넘어,
조화라는 이름의 윤리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