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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여행 중 한국의 비빔밥화를 기대하며

by 신성규

강원도의 작은 식당에서 나는 문득 변화를 느낀다.

예전에는 사투리를 쓰는 주방 아주머니들이 분주히 음식을 하던 곳에, 이제는 네팔,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주방을 지킨다.

한식의 국물 맛에는 여전히 손맛이 스며 있지만, 그 손은 더 이상 ‘한국 사람의 손’만은 아니다.

나는 아들을 떠올린다.

그가 살아갈 한국은, 아마 지금의 한국과 다를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을 믿었다.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하며 그 속에서 공동체성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었다기보다는 신화에 가까웠다.

제국주의 시대, 분열된 조선을 하나로 묶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같은 말, 같은 피부, 같은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편의점의 야간 근무자는 외국인 유학생이고, 택배 상하차장에는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노동자가 섞여 있다.

시장은 이미 섞였다.

아이들은 다문화 친구와 어울리고, 외국어는 더 이상 ‘특별함’이 아니라 일상이다.

그 속에서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오래된 간판처럼 빛을 잃어간다.


내 아들 세대는, 틀림없이 더 다양한 세상 속에서 자랄 것이다.

피부색, 언어, 종교, 음식, 가치관.

그러나 바로 그 ‘차이’가 생각의 자극이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해답은 뻔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배경과 맥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예상하지 못한 시선과 언어로 문제를 풀어낸다.


창의성은 결국 다른 것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단일성은 안전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것을 낳지는 못한다.


물론 변화는 늘 낯설고 두렵다.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같지 않다’는 말은

단지 보수적인 정서가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불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변화가 결국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거라고.

새로운 세계 속에서

내 아들은 피로 규정되지 않고,

사고와 표현, 공감과 상상력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구인가’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해야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폐쇄성과 경직성은

이제 다양성과 창의성이라는 이름으로 넘어서야 한다.


나의 아들, 그리고 그 세대는

한민족의 아들만이 아닌,

세계시민의 첫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조용히 기대하고 싶다.

조용히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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