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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로를 보고 고찰

by 신성규

나는 무심코 ’나는 솔로‘를 보게 되었다. 화면 속 사람들은 웃고, 대화하고, 속내를 털어놓고, 울기까지 한다. 그들의 감정은 생생했다. 그런데 나는 점점 불쾌해졌다. 혐오스럽다는 단어가 떠올랐고,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곱씹어야 했다.


처음엔 단순한 감정이었다. 바보 같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지? 왜 저렇게들 계산하고, 선택하고, 상처받고, 경쟁하는가. 연애라는 감정은 본디 자연스럽고 무정형이며 우연에 기대는 법인데, 이 프로그램 속 연애는 마치 오디션처럼 보였다. 사랑은 오디션이 아니라 충돌이고, 변형이며, 감각의 파편 아닌가.


그러나 이 쇼에서 감정은 구조화되고, 관계는 규격화된다. 직업, 외모, 말투, 스펙, 나이, 가족. 사람들은 자신을 브랜드처럼 포장하고, 상대를 스캔하듯 분석한다. 선택되지 않으면 탈락하고, 선택되면 상품화된다. 연애가 아니라 구직 면접 같은 이 구조 속에서, 나는 인간의 고유함이 침식되는 장면을 본다.


나는 왜 혐오를 느꼈을까. 어쩌면, 그 장면들이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가 사회에서 매일 겪는 ‘평가’와 ‘선택’의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감정을 연기하고, 가능성을 계산하고, 상처받은 척하거나 용기 있는 척해야 살아남는 현실. 그것이 미디어라는 가면을 쓰고 오락으로 포장될 때, 나는 그 구조에 대한 분노와 자기혐오를 동시에 느낀다.


진짜 사랑은 그렇게 효율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건 뜻밖의 공기, 흘러간 눈빛,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이유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감정을 설명 가능하게 만들고, 이해 가능한 구조로 정리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을 요구한다. 그 순간, 사랑은 콘텐츠로서 가공된다. 나는 그 순간이 가장 바보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세계가 나를 유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불쾌하다. 나도 언젠가 그런 포맷에 들어가 스스로를 판매하게 될까. 선택되지 않으면 상처받고, 선택되면 자아를 잃게 되는 그 룰 안으로?


나는 거기에 속하고 싶지 않다. 나의 감정은 그렇게 거래될 수 없고, 나의 사랑은 그렇게 소비될 수 없다. 나는 사랑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를 조용히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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