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가들을 사랑했다.
정확히는,
그들이 예술을 하려는 의지와 가능성,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는 미의 단서들을 사랑했다.
그녀들은 불완전했고, 흔들렸고, 종종 스스로를 의심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는 할 수 있어.”
“이건 이 방향이 더 좋지 않을까?”
“의도와 형식이 충돌하고 있어.”
나는 피드백을 주었고,
그건 분명 그녀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녀들도 그것을 알았다.
나는 그녀들의 작업을 코칭했다.
진심으로, 애정으로, 지식으로.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그들을 사랑했는가?
예술가인 그 사람 전체를 사랑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단지,
예술가로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의 빛나는 조각들만을 사랑했던 것일까?
나는 예술을 안다.
구조를 알고, 감각을 알고, 미의 리듬을 안다.
나는 어떤 문장에는 무릎을 꿇고,
어떤 음표에는 눈을 감는다.
그 감각은 예민하고 정확하다.
그래서 나는 예술을 할 줄 모르는 예술가,
혹은 예술을 향해 가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한 예술가에게
어딘가에서 차가웠다.
나는 그들을 조언하고 도왔지만,
실패하는 순간, 미적 감각이 무너지는 순간, 언어가 부정확해지는 순간의 그 사람을
충분히 감싸안지 못했다.
내 안의 어떤 선명한 기준이
‘예술가라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아?’라는
말하지 않은 기준선을 그었던 것이다.
그건 사랑처럼 보였지만, 평가였다.
나는 그게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
그녀들은 나를 존경했고, 나도 그녀들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나를 떠날 때,
나는 그것이 무의식적인 자기 보호였음을 느꼈다.
그녀들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그녀의 예술적 가능성은 사랑했지만,
그녀의 삐걱거리는 실패의 순간, 혹은 그냥 인간으로서의 허술함을
온전히 품지 못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예술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작업할 때의 언어, 생각, 문장, 감정의 리듬을 사랑하는 것이다.
작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쓰는 글의 분위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예술가라는 역할’의 그녀와
‘완성될 수 있는 가능성’의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이전의
좌절하는 인간, 표현이 막힌 인간,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그녀를
진심으로 안아주었는가?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이제야 안다.
진짜 사랑은,
예술을 잘 할 수 있을 때의 누군가가 아니라,
예술이 무너지고 말이 엉키고 자신을 잃어버릴 때조차도,
그 사람을 그대로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 사랑은 예술보다 어렵다.
완성보다, 실패와 함께하는 일이다.
그건 창작이 아니라, 동행의 예술이다.
나는 그 사랑을 아직 잘 모르지만,
이제는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