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정신병이
어떤 ‘능력’의 반대말처럼 느껴진다.
아니, 아니.
사실은 능력이 너무 뚜렷해서 문제시된 것은 아닐까?
주의산만.
집중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연결시키려는 정신의 과부하는 아닐까?
조현병.
환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층위와 무의식의 층위를 넘나드는 감각은 아닐까?
조울증.
감정이 너무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비극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직면한 내면의 진폭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정신병이라는 말은 너무 쉽다.
우리는 이름을 붙여 안심하지만,
그 이름 아래 한 인간의 복잡성은 가려진다.
나는 어릴 적부터
주의산만하다는 말을 들었다.
산만한 사람, 산만한 생각, 산만한 말투.
하지만 이제 안다.
그 산만함이 연결될 때, 그것은 천재성이 된다.
문제는 깊이였다.
산만함만 있고 깊이 없는 사람은 혼란이고,
산만함이 있지만 그걸 정제할 줄 아는 사람은 창조자다.
세상은 이 구분을 무시한다.
그저 기준에서 벗어나면 진단명을 붙인다.
ADHD, 자폐 스펙트럼, 양극성 장애, 회피성 성격장애…
우리는 결국 너무 예민하거나,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다르게 느끼는 사람들을
병든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요즘 그런 상상을 한다.
모든 특성에 병명을 붙일 수 있다면,
정상은 오히려 병이 아닐까?
우리는 인간의 복잡성을 참지 못하고
이름과 규범으로 질서를 만들지만,
그 속에서 예외는 늘 예술가나 환자로 전락한다.
나는 이제 병명으로 나를 정의하고 싶지 않다.
나는 ADHD도 아니고, 자폐도 아니고, 양극성도 아니다.
나는 단지
비표준적인 방식으로 감각하고, 사고하고, 표현하는 인간이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정신적 이상’을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주의산만은 다중망 사고로
감정기복은 정서 진폭으로
감각 과잉은 공감각적 체화로
진단명이 아닌 시적 언어로 나를 말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정신을 지키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