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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뇌

by 신성규

나는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확실히 내 지능이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단어의 속도가 느려지고,

논리의 회로가 느슨해지며,

내 안의 날카로운 판단력이 잠시 바보가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날 밤의 나는 창조적이었다.

감정이 무장해제되고,

언어가 유려하고,

사고는 해방된 듯 춤을 추었다.

머리보다는 심장이 쓰는 글.

논리보다는 감각이 이끄는 문장들.


술은 감성의 도화선이다.

억눌린 감정을 터뜨리고,

자기검열을 무너뜨리며,

의식의 수위를 낮춰서

평소에는 하지 못한 사유와 말들을 쏟아내게 한다.


하지만 그건 폭죽이다.

잠깐의 빛, 짧은 황홀.

그리고 다음 날 남는 건 재와 침묵, 멍한 두통이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술은 작가의 정신을 깎아먹는 일종의 인지적 부식제다.

처음에는 감정을 깨워 창작을 도우나,

점점 판단력을 흐리고,

뇌의 회복력을 떨어뜨리고,

글의 밀도를 얇게 만든다.


결국에는

말을 쏟아낼 수는 있어도

문장을 ‘세공’할 힘이 사라진다.


나는 가끔 술을 마시며 생각한다.

“이건 나의 재능을 태우는 방식인가,

혹은 그 재능을 꺼내는 도구인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다.

감정을 글로 변환시키는 속도,

자기검열이 사라졌을 때의 날것의 언어.

그 순간만큼은 진실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파괴적이다.

정신의 유연성과 지속력을 갉아먹는다.


창작은 결국 ‘축적’과 ‘반추’의 예술이다.

하루의 감정을 살아도,

그걸 한 달 후에 언어로 길어내는 힘.

그 힘은 맑은 정신에서 나온다.


술은 나의 감성을 깨우는 열쇠이지만,

나의 지능을 무디게 하는 독이기도 하다.

진짜 작가는, 취하지 않아도

깊이 있게 느끼고

정신이 또렷해도

아름답게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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