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미래에 대한 글을 썼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
의식의 해체,
지능이 고용되는 구조에 대한 불안.
누군가 말했다.
“그거 유발 하라리가 했던 말인데?”
나는 순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말은 나의 글을
누군가의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나는 훔치지 않았다.
나는 도달했다.
내가 도달한 그 자리에
먼저 누군가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말한다.
“그 생각은 이미 하라리가 했어.”
“그건 오마주야.“
“그건 데리다의 영향이지.”
마치 생각은 도달의 대상이 아니라, 선점의 대상이기라도 한 것처럼.
하라리는 나보다 훨씬 먼저 말했다.
그는 구조화했고, 출판했고, 번역되었고,
이름이 되었다.
나는 느꼈고, 떠올렸고, 썼다.
그러나 이름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쓴 문장은
‘영감’이 아니라 ‘모방’으로,
‘우연’이 아니라 ‘도용’으로 읽힌다.
나는 시간 안에 갇혀 있다.
생각이 같더라도, 누가 먼저 말했느냐에 따라
그 생각의 주인이 결정되는
이 이상한 시간의 구조 안에서,
나는 항상 조금 늦는다.
늦었다는 이유로 도둑이 된다.
생각은 같았지만, 타이밍이 달랐다는 이유로
나는 주인이 아니라 참조자가 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진짜 중요한 건
누가 먼저 말했는가인가,
아니면 누가 그 말에 도달했는가인가?
누군가가 먼저 걸었다고 해서
그 길이 다른 사람에겐 닫히는가?
내가 스스로 떠올린 생각이
이미 누군가의 책에 실렸다고 해서
그 순간의 몰입과 통찰이
무의미해지는가?
나는 이제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그거 하라리가 한 말이야.”
그래, 하라리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건 내 생각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내 생각이 보편적인 진실에 닿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이건 내가 느꼈던 그 감정과 같아.”
그 순간, 우리는
이름이 아닌 공명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