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축된 우아함
나는 가끔 도시를 걷는다.
아니, 걷는다는 행위보다 먼저, 도시를 본다.
빛이 꺾이는 유리의 각도, 회색 콘크리트 틈에서 피어오르는 무채색의 질감, 지나가는 자동차의 실루엣까지 —
모든 것이 나에게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말을 건넨다.
요즘은 작은 차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벤츠 A클래스 해치백.
어딘가 단정하면서도 자유로운 그 차체는 마치 도시 속의 이방인처럼, 규율을 따르면서도 자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그 안에서 기하학적 질서와 감각의 절제를 본다.
유럽인들이 왜 해치백을 사랑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들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와 호흡하는 감각의 단위,
좁은 골목과 굴곡진 길을 무리 없이 통과하는, 작지만 완전한 존재이다.
유럽식 실용주의의 미학. 미니멀하면서도 도시와 조화를 이루는 실루엣...
걷는 문화 속에서 자동차는 움직이는 인격으로 패션과 동일 선상에 있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욕망이라 부르며, 미감을 흠으로 바꿔버린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어떤 여성들은, 아니 많은 사람들이,
실은 그 안에 무의식적인 감각적 정확성이 있다.
그건 외적 과시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감각적 자율성을 향한 은밀한 저항이다.
사람들은 ‘기호’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감각을 은밀히 표현한다. 이건 미세한 미학적 정체성의 선언이다.
나는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시가 품고 있는 감각의 잔재들을 사랑한다.
차창에 비친 구름, 횡단보도 위 스치는 검은 실루엣,
그리고 해 질 무렵, 골목에 멈춰선 작은 벤츠 한 대.
그 모든 순간들이 내게 말한다.
이곳에도 아직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