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인간의 도덕적 지형에는 뚜렷한 양극이 있다.
한쪽 끝에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사회의 규범을 무너뜨리는 파괴자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자신의 안위를 초월해 타인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성자가 있다. 전자는 사이코패스, 후자는 성자라 불린다. 얼핏 보기에 이들은 정반대의 존재처럼 보이지만, 심리적·철학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닮아 있다.
사이코패스는 위험이나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편도체와 전두엽 사이의 연결이 약해 위험 신호에 둔감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들은 살인이나 사기 같은 행위 앞에서조차 불안이나 죄책감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성자 또한 두려움이 없다. 마하트마 간디가 죽음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듯, 예수나 소크라테스가 목숨을 내던지며 자신이 믿는 진리를 고수했듯, 성자의 용기는 인간 보통의 두려움 회로를 뛰어넘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두려움의 결여’가 방향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른 삶을 산출한다는 점이다. 사이코패스에게는 그것이 파괴적 무모함으로 나타나고, 성자에게는 그것이 초월적 용기로 나타난다.
사이코패스는 사회의 규범을 무시한다. 그는 법과 도덕을 자신을 구속하는 장치로만 보며, 그것을 깨뜨릴 권리를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 “나는 법 위에 있다”라는 자기중심성이 그들의 세계관을 지배한다.
그러나 성자 또한 규범을 넘어선다. 성자는 사회의 도덕적 상식과 거래적 정의를 초월한다. 일반인은 ‘눈에는 눈’을 외칠 때, 성자는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라’고 말한다. 그에게 법과 질서는 진리와 사랑이라는 더 큰 질서 아래 놓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이코패스와 성자는 모두 “평범한 인간의 규범”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단지 그 초월의 결과가 파괴냐 헌신이냐로 갈릴 뿐이다.
사이코패스는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상대방을 철저히 도구화하며, 냉정하게 계산한다.
성자 또한 목표에 몰입한다. 단지 그의 목표는 자기 이익이 아니라 신, 진리, 혹은 인류애다. 성자의 몰입은 이타적 사랑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 자신을 소멸시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따라서 두 집단 모두 ‘보통 인간보다 강한 집중력과 몰입력’을 공유한다.
다만, 사이코패스의 몰입은 자기 이익의 절대화를 향하고, 성자의 몰입은 자기 초월과 헌신으로 흐른다. 같은 에너지, 다른 방향성.
결국 사이코패스와 성자의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자아의 경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을 사회적 인간으로서 보지 않는다. 그는 관계와 규범을 무시하고, 자기 욕망을 우주의 중심으로 세운다. 즉, 자기중심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반대로 성자는 자기라는 존재를 지워버린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신, 혹은 사랑의 것이다.” 자기초월의 극단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나와 타인’, ‘내 이익과 규범’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산다. 그러나 사이코패스와 성자는 그 울타리를 무너뜨린다. 차이는 단지 그 무너뜨림이 자기 절대화로 귀결되느냐, 자기 소멸로 귀결되느냐이다.
니체는 인간을 ‘가치 창조자’라 불렀다. 평범한 인간은 기존의 규범에 복종하지만, 위버멘쉬는 스스로 가치를 창조한다. 이때 그 힘이 자기 중심적 욕망에 쓰이면 파괴자가 되고, 타인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면 성자가 된다.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이를 날카롭게 묘사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을 “위대한 인간”이라 믿고 살인을 저지르지만, 끝내 양심과 죄책감에 무너진다. 반대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료샤는 성자의 길을 택해 자신을 비워낸다.
두 인물 모두 평범한 인간을 넘어선 자들이지만, 그 결과는 극단적으로 달랐다.
사이코패스와 성자는 인간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두 얼굴이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의 결여, 규범을 넘어서는 태도, 강한 몰입력, 자아 경계의 붕괴라는 공통성을 갖는다.
다만 그 힘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한쪽은 파괴자가 되고, 다른 쪽은 구원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악을 단순히 본질적 차이로 보지 않고, 동일한 인간적 성향이 방향을 달리할 때 어떻게 다른 삶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아야 한다.
사이코패스와 성자는 정반대의 극단이 아니라, 어쩌면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갈래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