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영원한 아이

by 신성규

극한의 순수성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른다. 시인이란 단순히 운율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언어로 길어 올리는 존재다. 계산과 이해관계, 효율의 언어로 포장되기 전에, 눈앞의 세계를 경이로움과 호기심으로 마주하는 태도. 그것이 곧 시인의 본질이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으로 태어난다. 그들의 눈에는 세상이 신비롭다. 평범한 돌멩이 하나도 보물이 되고, 빗방울 하나에도 우주의 신비를 본다. 아이들은 언어를 ‘정해진 의미’가 아니라 ‘자유로운 놀이’로 사용한다. 질문은 끝이 없고, 사소한 순간도 시가 된다.


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그 시적 순수성은 서서히 사라진다. 사회는 아이에게 정답과 규범을 가르친다. 질문 대신 답을 요구하고, 자유로운 언어 대신 기능적 언어를 주입한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현실을 ‘관리’할 수 있는 성인이 되지만, 동시에 세계를 시적으로 바라보던 눈을 잃는다. 시인은 줄어들고, 계산적 인간이 남는다. 아이는 시인으로 완성되어 태어나지만, 성인이 되며 바보가 되어가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 의미의 ‘성숙’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의 시적 감각을 완전히 지워버릴 때, 인간은 자신의 본질적인 감각을 잃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의 순수성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순수성을 지키며 현실과 조화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


위대한 시인들이란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의 눈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세계를 처음 본 듯 바라보고, 익숙한 것 속에서 낯섦을 발견하며, 삶의 사소한 순간들을 노래하는 능력. 그것은 다시 말해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켜낸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으로 태어난다. 문제는 그 순수한 시인이 성인이 되면서 사라지느냐, 아니면 성숙 속에서도 살아남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진짜 지혜란, 바보처럼 계산만 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는 성인이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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