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노홍철이 TV에서 “멍청한 여자가 좋다”고 말했을 때, 처음엔 웃겼다. 하지만 그 말이 어딘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단순히 예능을 위한 멘트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공감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왔으니까. “나는 왜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보다 단순한 사람에게 끌릴까?” 그리고 그 감정은, 웃기게도 내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내 사고가 무겁다. 쓸데없이 많이 생각하고, 쉽게 피로해지고, 때로는 멈출 줄 모른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이 무게가 후손에게까지 이어질까 봐, 두려워진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결이 다른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다. 더 단순하게, 더 밝게, 더 가볍게 사는 사람. 세상을 깊게 파기보다 평평하게 걷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내 생각의 과잉이 조금은 중화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사실 여기서 ‘멍청한’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순수한’ 혹은 ‘단순한’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을 너무 복잡하게 보지 않고, 의심보다 신뢰를 먼저 선택하며, 피로한 사고보다 명랑한 직관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떤 천진함이 있다. 나는 그게 부럽고, 그래서 끌린다.
지적 수준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단순함은 선택일 수도 있다. 세상을 더 쉽게 살기 위해 불필요한 생각을 덜어낸 사람들. 그 단순함은, 내가 갖지 못한 능력이다. 나는 그런 단순함이, 내 삶을 다독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결혼이란 단순히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때로는 자기 균형을 위한 선택이다. 내가 가진 것을 상대가 중화시켜줄 수 있을 때, 그 관계는 오래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너무 나를 닮은 사람보다는, 나와 다른 리듬을 가진 사람. 너무 나처럼 생각하기보단,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에게는 더 필요하다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이를 생각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 사고가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기를, 이 삶의 무게가 다음 세대에게는 조금 가벼워지기를. 그래서 나는 단순한 사람을 택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단순함은 나에게는 안정이고, 우리 아이에게는 가벼운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