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독에만 관심이 있었다. 무색무취, 0.5g이면 치명적. 복어는 완벽한 살해 도구였다. 하지만 이 독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허가받은 자만이 독을 만진다. 그래서 나는 복어 요리사가 되기로 했다.
그 일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하루 열다섯 마리의 복어를 손질하고, 네 번 칼을 갈고, 말하지 않고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자고, 아침마다 손등을 닦았다. 복수의 동기는 나를 무기력한 삶에서 끌어올린 유일한 이유였다. 분노는 동력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칼처럼 만들었다.
십오 년이 지나, 나는 도쿄 미쉐린 별을 받았다. 이십 년째 되는 해에는 ‘아시아 복어 요리 명장’으로 뽑혔다. 3년 후, 한국에 내 이름을 건 첫 매장을 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가 나타날 때까지.
그날은 겨울이었다. 기온이 떨어진 날엔 복어를 먹으러 오는 손님이 늘어난다. 늙은 그가 아들과 함께 들어섰을 때, 나는 그의 이름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앉은 자리, 뺨의 흉터, 젓가락을 쥔 손의 흔들림. 그는 예전보다 작아져 있었고, 기억도 더듬거리며 꺼내는 듯했다.
“여기… 복어 맛이 좋다고 하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어를 준비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아들은 기업을 물려받은 얼굴이었고, 며느리는 내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들의 대화에서 여전히 타인을 멸시하는 농담들이 이어졌고, 내 이름을 한 번 거론했다.
“그 요리사, 재야에서 올라왔다더군. 옛날엔 감옥도 갔었다던데.”
거짓말이었다. 나는 감옥에 간 적 없다. 다만,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 저 앞에 앉아 있었다.
조용히 칼을 꺼냈다. 복어의 간에서 테트로도톡신을 분리해내는 건 손의 일이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날 나는 독을 한 접시에만 넣었다. 아주 얇게 썬 사시미 한 점에.
그가 젓가락을 들 때,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순간을 위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감정도, 관계도, 시간도. 복수라는 명분은 나를 기계처럼 만들었고, 명성은 나를 조각처럼 다듬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살아 있었다.
그의 손이 입으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실소를 흘렸다.
“이게, 전부야?”
그는 입에 넣고, 씹고, 삼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이 든 건 다른 접시였다.
며느리 쪽이다.
나는 평온했다. 기억이라는 건 이상하다. 그가 나를 무너뜨리던 그 날, 그의 며느리는 증인석에서 나를 조롱하듯 웃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 찰나의 웃음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나는 그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3시간 뒤, 호텔에서 의식을 잃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내 가게는 위생 검열에 통과했고, CCTV는 내가 정직하게 일한 기록만을 남겼다. 나는 병원에서 실소를 흘리다, 휘청거렸고, 의사는 나에게 정신분열 가능성을 적었다. 경찰은 나를 조사하지 않았다. 나는 범인이 아니었다. 나는 정신병자였다.
나는 병원에 있다.
창문 밖으로 햇빛이 비친다.
세상은 아직도 무척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