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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서점은 나를 슬프게 한다

by 신성규

요즘의 서점은 더 이상 책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독서모임, 전시, 커뮤니티, 그리고 커피향. 사람들은 말한다. “책만 파는 시대는 끝났어요. 이제는 경험을 팔아야 해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막힌다.


서점이 네트워킹의 허브가 되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플랫폼으로 진화한다는 말은 언뜻 멋져 보인다. 하지만 그 ‘진화’라는 단어 안에 감춰진 방향성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은 결국 팔기 위해 만들어지는 구조, 함께 소비하도록 유도되는 동선, 그리고 책이라는 고요한 사유의 대상이 상품 이상의 것을 강요받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이란, 철저히 고독한 것이기를 바란다. 한 사람이 한 문장을 오래도록 붙잡고, 머릿속에서 수십 번 회전시킨 끝에야 조금 깨닫게 되는 그 느린 진실의 형식. 그런데 요즘의 서점은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계기로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독서모임, 북토크, 커뮤니티. 그것은 나에게 어느새 ‘책의 외피를 쓴 카페’로 느껴진다.


책이 팔리는 공간보다, 책이 잠들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 굳이 조명이 따뜻하지 않아도 좋고,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아도 된다. 굳이 누군가와 감상을 나누지 않아도, 스스로 사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책은 대화의 도구가 되어버리고, 서점은 마치 작은 SNS처럼 진동한다.


책을 고르는 행위가, 개인의 내면을 향한 가장 은밀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선택의 순간마저 큐레이션된 틀 안에 들어가고, ‘잘 팔릴 책’,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 ‘SNS에 어울리는 문장들’만이 앞에 놓일 때, 나는 책이라는 존재가 또 하나의 상품적 콘텐츠로 변해가는 것을 본다.


그래서 물러선다. 팔기 위해 존재하는 것에 마음을 내어주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혼자 읽고, 혼자 사유하고, 혼자 조용히 감동하는 그 형태를 잃고 싶지 않기에.


나는 믿는다. 책은 관계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나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존재한다. 그 침묵의 고요함을 더 이상 빼앗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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