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쉽게 말한다.
“나는 글을 못 써요.”
그 말은 마치, 손재주가 없어서 피아노를 못 친다는 식이다. 하지만 글쓰기란 단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 내면의 지형도, 뇌의 결 구조가 모두 투사된 결과다.
많은 사람들은 말하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사석에서 그들은 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글’이 되는 순간 그들은 멈춘다. 막막하다고 말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막막함은 단순히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직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생각은 대개 파편적이다. 기억과 감정, 타인의 말과 자신의 상처가 중첩되어 있다. 그 파편을 엮어 하나의 맥락으로 통합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은 이 작업을 시도한 적이 없다. 자기 생각을 의심해본 적도, 층위를 나눠본 적도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글을 못 쓰는가? 그것은 언어의 문제인가, 뇌의 문제인가?
복잡한 감정이나 직관은 언어로 표현될 때 단순화되고 왜곡된다. 많은 이들은 내면의 혼란을 어휘의 부족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고의 미정형성이 언어로 표현되는 걸 어렵게 만든다. 즉, 언어는 도구지만, 사고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언어 사용은 무의미하다.
언어는 결코 완벽한 도구가 아니다. 단어는 감정의 세밀한 곡선을 담기엔 투박하며, 개념은 직관의 입체성을 쉽게 놓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언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언어로 옮길 만큼 구조화된 사고가 없다는 데 있다.
글쓰기는 단순한 언어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주의력, 기억, 추론, 계층적 사고, 감정 통제가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고차원적 활동이다. 따라서 이는 훈련된 두뇌에 가까운 사고 기능을 요구한다.
사고에는 층위가 있다. 단순한 사실 진술부터, 그것의 의미를 묻는 분석, 그리고 그 이면의 구조를 보는 해석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1층에서 말을 한다. 감정과 단편적 의견, 경험의 나열로 말이다. 글쓰기는 2층,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단편이 아닌 연결, 경험이 아닌 구조로 세상을 다루는 법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사고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추론이 한 층 이상 깊어지면 피로를 느낀다. 비선형적 구조, 인과적 연결, 논리의 교차 구조를 견디는 능력은 선천적인 능력과 반복된 훈련에 의해 형성된다.
논리적 글쓰기는 일정한 규칙을 통해 훈련 가능하다. 기-승-전-결 구조, 토픽문장 쓰기, 수사법 훈련 등. 하지만 자기 언어로 사고를 구성하는 능력, 즉 형태 없는 생각을 언어로 구획화하고, 나열된 언어를 다시 구조화하는 능력은 단순한 기술 교육으로는 어렵다. 이는 철학적 사유, 비판적 독서, 자아 성찰을 통해 비로소 확장된다. 지식 전달이 아닌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여정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은 ‘잘 쓰는 법’을 묻는다. 글쓰기를 어렵게 여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단어”가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이다. 그들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질문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글쓰기는 문장의 싸움이 아니라, 존재와 사유의 싸움이다.
나는 가끔 놀란다. 왜 어떤 사람은 몇 줄의 문장 안에 세계를 압축하고, 어떤 이는 몇 페이지를 써도 핵심이 없을까? 그것은 언어의 차이가 아니라, 존재의 차이다. 어떤 이는 질문하며 살아왔고, 어떤 이는 순응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살아온 자는 글도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다. 당신은 아직 당신 안의 생각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