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수많은 언어로, 시선으로, 맥락으로 정의되지만
그 어느 정의도 완결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계가
완전히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님을 안다.
역사는 흐르지만, 반복된다.
가치관은 바뀌지만, 근본 욕망은 유사하다.
전쟁은 양상을 달리할 뿐이며, 권력은 모양을 바꿔 다시 군림한다.
이 시대의 ‘자유’도, 이전 시대의 ‘신’처럼 숭배된다.
이러한 반복은, 세계가 완전히 무정형적인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우리는 ‘세계는 정의되지 않는다’는 말 뒤에 숨어
모든 판단을 유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무책임의 다른 이름이 된다.
세계 속에서 살고, 결정하고, 사랑하고, 증오하는 이상
어떤 구조는 여전히 우리를 관통한다.
그 구조는 시대마다 드러나는 방식만 달라질 뿐,
인간이라는 종의 문명 속에 기입되어 있는 형식일지도 모른다.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유의 겸허함을 뜻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에 대한 개입을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 사이에도 누군가는 권력을 갖고 누군가는 상처 입는다.
그 침묵은 결국,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조력자다.
“판단은 폭력이다”라고 말하는 철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폭력을 피하는 일은,
진정한 정의가 도래할 가능성마저 제거한다.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고통받는 자를 보지 않게 되고,
자신은 중립에 있다는 환상 속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은,
악한 판단이 아니라 아무 판단도 하지 않는 태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