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전부터 타인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단지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느냐보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하필 그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 순간의 억양은 무엇을 반영하고 있었는지 등에 더 큰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러나 반복되는 관찰 속에서 한 가지 역설에 도달한다. 많은 이들이 “그냥” 말했다고 말한다. 즉, 그 어떤 의도도 없이, 단지 떠오르는 말을 무심코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발생한다. 의도 없이 말한 문장에도, 무의식은 드러나는가?
정신분석학과 인지과학은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를 제공한다. 프로이트는 실언을 통해, 억압된 욕망과 감정이 무의식의 통제를 뚫고 말로 분출된다고 보았다. 오늘날 신경과학과 심리언어학은 이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좀 더 정제된 설명을 내놓는다. 뇌는 실시간으로 언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감정, 기억, 습관화된 표현 패턴을 참조한다. 즉, 사람은 말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뇌의 비의식적 자원을 끌어다 쓰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말에 의미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무의식은 종종 발화된 언어의 형태, 문장 구조, 말의 리듬 속에 자신도 모르게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중요한 반대 방향의 질문도 존재한다. 나는 왜 타인의 말 속에서 무의식을 해석하려 드는가? 여기에는 나의 인지 스타일이 개입한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나는 ‘높은 인지 민감도’와 ‘구조적 정보처리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즉, 말의 패턴, 문장 선택, 맥락에서 벗어난 표현을 탐지하고 분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 해석의 문제는, 언제나 과잉 해석의 위험을 동반한다. 타인의 말은 종종 맥락, 피로, 분위기, 상황적 변수에 의해 결정되며, 반드시 심리적 진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의 조각을 모아 마음의 구조를 그리려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언어는 행동보다 먼저 드러나는 인격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에는 무의식이 일정 부분 드러나지만, 그것의 해석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의도를 갖지 않은 말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정서 구조를 반영할 수 있다. 다만, 그 말이 무조건적 진심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해석자의 책임이 아니라, 추론자의 한계를 인식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