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소유의 윤리를 향하며

by 신성규

역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서는 ‘소유’다.

인간은 국가를 만들었고, 제도를 설계했고, 윤리를 발명했다.

그 모든 바탕에는 ‘무엇을 누구의 것이라 할 것인가’라는

침묵된 질문이 있었다.


결혼제도도, 육아도, 심지어 ‘가족’이란 이름조차도

소유의 이데올로기를 은밀히 전파해온 매개였다.


사랑의 제도화는 결혼이지만,

결혼은 사랑을 ‘계약’으로 고정하려는 구조다.


누구와만 사랑하라

한 명과 평생을 약속하라

성은 통제되어야 한다

자식은 재산을 이어받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 불리는가?


결혼은 ‘불확실한 관계’를 견디지 못한 인간이

법이라는 진공포장지로 감정을 봉인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법이 사랑을 보호할 수 있는가?

사랑은 오히려 자유 안에서 피어난다.


부모는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자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이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며,

삶의 이유, 꿈의 대리자, 재산의 계승자라는

수많은 ‘소유의 형태’로 감싸 버린다.


그러나 아이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는 하나의 독립된 세계다.


부모라는 이유로 타인의 삶을 기획할 권리가 있는가?

자식에 대한 무한책임은,

실은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사회에 책임지지 않기 위한

면죄부로 작동해왔다.


사유 재산은 죽음을 넘어선 소유욕이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삶에 간섭하는 방식이다.


재산 상속은 가족 간 사랑의 연장인가,

혹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족을 전략적 소비 단위로 환원한 결과인가?


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격차와 계급을 고착화한다.

아이의 가능성이 부모의 소유력에 종속된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가?


결혼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며,

육아는 가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몫이며,

재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가능성이라면?


그 사회에선 누구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자식을 위해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며,

누구도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소외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공산주의도, 유토피아도 아니다.

그건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만드는 제도적 상상력’이다.


우리는 사랑을 소유하려 했고,

인생을 자식에게 저당 잡혔으며,

자유를 결혼의 계약서에 가두었다.


그러나 지금,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진짜 사랑, 진짜 공동체,

진짜 인간다움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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