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멈추지 않는다 — 돈이 우리를 잠식할 때
대개 사람들은 돈이 자아를 자유롭게 해주는 도구라고 믿는다.
재정적 자유, 파이어족, 장기투자, 포트폴리오…
이 단어들은 마치 현대인의 해방을 노래하는 찬가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낀다.
금융은 영혼을 해친다.
그건 내가 투자를 직접 경험하며 체화한 명제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분석을 해야 하고,
그 분석은 결국, 타인의 불행에 둔해지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극보다 비극이 미칠 자산 시장을 본다.
주식은 남의 고통이 반영된 숫자다.
한 기업의 하락은 누군가의 해고이고,
누군가의 파산은 내 수익이 된다.
그 점에서 나는 문득, 냉혹함과 공감의 단절 사이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금융은 멈출 수 없다.
이 세계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무한 루프에 빠져 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빠른 매매, 더 큰 수익.
AI 트레이딩, 알고리즘 투자, 심지어 감정까지 예측하려는 모델들.
인간은 더 이상 판단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인간을 조종한다.
워렌 버핏조차도 젊은 시절엔 날카롭고 표독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점차 장기투자로 철학을 바꾸어갔다.
표면적으론 운용하는 돈이 커져 대형주로 갈 수 밖에 없다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지 전략적 선택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아마도 그 변화는 감정의 예민성에서 비롯된 회피였을 것이다.
그 역시 느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누구의 파멸 위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가?”라는 자괴감.
고대 사회는 금융을 인류의 적으로 간주했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중세 가톨릭까지
이자는 죄였고,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도덕적 위험을 내포한 매개체였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기술적으로 중립적인 도구라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무한 증식에 대한 집착,
다른 이의 고통을 전제로 한 나의 이익,
그리고 인간을 숫자로 환원시키는 체계가 잠복해 있다.
월가의 전설들.
그들은 대부분 청춘을 매우 날카롭게 보낸다.
코카인, 밤샘 거래, 인간관계의 단절…
그들의 눈빛은 예민하지만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다.
그건 자본이 부른 승리인가, 아니면 감정이 생존을 위해 폐기한 자기 자신인가?
나는 묻는다
금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가.
투자는 인간 본성의 검은 구멍을 바라보게 한다.
단기 수익의 기쁨 뒤에, 누군가의 절망이 깔려 있다는 사실.
나는 그 섬뜩함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한다.
이 도구를 어떻게 다루어야,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이 구조를 넘어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