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은 병명이자 은유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누적이 아니라,
문화가 개인의 몸에 새긴 서사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내 입은 닫혔고,
불은 위로 솟았다.
누가 가르쳤는가.
말하지 말라고,
견디는 것이 사람답다고.
그래서 나는 견뎠다.
말 대신 침묵으로.
내 속에서 피어오른 그 불은
말이 되지 못한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면
이기적이라 했다.
나는 참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겐 착한 사람,
누군가에겐 평범한 인간,
그러나 나에게는
스스로를 불태우는 화덕.
동아시아에서 ‘참음’은 미덕이었다.
질서, 유교, 연공서열, 체면,
이 모든 덕목은 사람을 안으로 조용히,
그리고 끓게 만들었다.
우리는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편을 택했다.
서구의 교육은 자기표현을 장려한다.
그러나 한국의 일상, 관계, 가족, 조직은
여전히 동양적 질서 위에 있다.
이 둘의 비대칭 충돌 속에서,
화병은 문화적 정신질환으로 자리 잡았다.
서양의 철학은 나에게
“말하라”고 했고,
동양의 관습은 나에게
“참으라”고 했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살아 있는 송장처럼 떠돌았다.
“참지 마라”는 말조차,
이제는 상투적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참음의 끝은 병이고,
병은 언어를 삼킨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말하려 한다.
내 안의 불을,
내가 쓴 문장으로
하나씩 꺼내어 놓으려 한다.
누군가는 거북하다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오만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첫 번째
자기구원이다.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참기만 하다 폭발하여 때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범죄조차도,
어쩌면 한 개인이 오랜 시간 견딘 끝에 내뿜은 신체의 절규다.
우리는 ‘참으면 병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참는 것을 미덕으로 가르친다.
그 모순의 끝에,
사람들은 몸으로 분노하고, 몸으로 무너진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참음이 아닌, 건강한 표현과 감정의 권리로.
분노는 죄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훼손당했을 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리고 존재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말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