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불멸

이상주의자의 가장 위대한 실패에 대하여

by 신성규

에스파냐의 쇠락기, 그리고 카톨릭의 폐쇄성이 강했던 시대. 창작의 자유란 제한되고, 예술은 종종 권력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이런 시대에 작가는 선택을 해야 했다. 현실과 타협하거나, 미친 자로 가장해 체제의 빈틈을 파고들거나. 세르반테스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철저히 실패하기 위해 창조된 인물, 돈키호테를 내세움으로써 오히려 무제한의 자유를 획득한다.


돈키호테는 성공과는 거리를 둔다. 그는 주류로부터 벗어나고자 스스로 패배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 “패배자”는 시대의 위선을 조롱하고, 무모함 속에 진실을 담으며, 끊임없이 이상을 좇는다. 그가 싸우는 것은 거대한 악이 아니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일상 속의 부조리들이다. 그래서 그의 싸움은 실패로 끝나지만, 그 실패는 우리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겪는 실존적 갈등의 상징이다.


돈키호테가 상징하는 것은 단지 몽상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불화하고, 끝내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진정한 백미는 이 죽음 이후에 나타난다. 돈키호테는 죽지만, 그와 함께 모험을 했던 산초가 모험을 선언하면서, 돈키호테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인간을 벗어나 상징으로 부활한다. 세르반테스는 여기서 이상주의가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그것이 타인에게로 옮겨가며 생명을 얻는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한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대조적인 인물이지만, 이 둘은 갈등이 아닌 변화와 융합의 과정을 겪는다. 산초는 처음에는 현실주의자였지만, 점차 돈키호테의 광기에 물들고, 마침내 그 정신을 계승한다. 이 변화는 인간의 본성 속에서 현실과 이상의 충돌이 어떻게 서로를 변화시키고, 때론 구원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단순한 풍자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에 대한 가장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꿈꾸는 자의 위엄을 본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존재의 고귀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때로는 무모해 보일지라도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자가 결국 인간성의 불씨를 지키는 자임을 깨닫는다.


현실에 물든 이성은 우리를 지켜주지만, 이상이 없으면 인간은 생기를 잃는다. 돈키호테는 그 이상을 품고, 무너지며, 결국 부활한다. 우리 모두가 갖는 허황된 꿈. 하지만 그 꿈 없이 인간은 단지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돈키호테는 패배한 영웅이지만, 가장 위대한 실패를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말한다.


그는 결국 죽지만, 그 정신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는 풍차를 향해 창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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