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노동, 예술의 운명

by 신성규

예술가는 언제 행복한가?

명성을 얻을 때? 전시회가 성황일 때? 아니면 누군가 작품을 거액에 사갔을 때일까?

어쩌면 예술가는 오히려 가장 쓸쓸할 때, 가장 가난할 때, 가장 불확실할 때 그 중심에서 진짜 기적을 마주하는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삶은 언제나 비극의 수사와 가깝다.

이중섭은 아들 얼굴 하나 마음껏 보지 못한 채 떠돌다가 생을 마쳤고, 권진규는 끝내 세상과 접점을 잃고 스스로 생을 거두었다. 예술을 ‘직업’이라 부르기엔, 그들의 삶은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절절하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은가?

이토록 파괴적이고 불확실한 삶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창작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한 점의 그림’, ‘한 줄의 문장’, ‘한 겹의 선율’이 전부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보상받는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말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정말 날마다 오니까.”


예술은 기적의 노동이다.

그 기적은 어디서 오는가? 몰입에서 온다.

작품에 몰두하는 그 순간, 예술가는 세상과 끊기고, 시간을 잊는다.

그 순간만큼은 자존도, 돈도, 평판도 사라진다. 오직 존재만이 남는다.

이 존재의 감각 — 그것이 바로 예술가가 끝내 버릴 수 없는 ‘기쁨’이며,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보람’이다.


예술가의 운명은 불행이 아니라 내면의 신성함을 향한 맹목이다.

그것은 돈과 맞바꾸기엔 너무 순수하고, 명예와 교환하기엔 너무 사적인 것이다.

예술혼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에 위대하고,

때로는 세상을 거절하기에 비극적이다.


돈을 위해 예술을 하는 이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돈이 예술을 설명할 수는 없다.

진짜 예술가는 돈을 넘어선 자들이며,

기적을 기다리지 않고, 기적을 매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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