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천재를 ‘타고난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천재성은 단순한 선천적 자질이 아니라, 세계를 구조적으로 보는 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자주 간과된다. 구조를 본다는 것은, 혼란 속에서 패턴을 감지하고, 분절된 것들 사이에 다리를 놓으며, 무형의 질서를 직감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수학자와 예술가, 과학자와 시인의 공통된 능력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세계를 수식으로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세계를 시로도 볼 수 있는가?”
놀랍게도 이 두 질문은 동일한 본질을 향하고 있다. 수학은 우주의 언어이고, 시는 인간 내면의 언어이다. 구조를 본다는 것은 두 언어 사이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아이들은 수학을 싫어하지만, 퍼즐은 좋아한다. 계산은 지겨워하지만, 레고는 잘 만든다.
왜일까? 하나는 ‘정답을 강요’하고, 다른 하나는 ‘탐색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천재성은 탐색 속에서 자란다.
나는 다시 질문한다.
“창작을 수학이 아닌 놀이로 여길 수 있을까?”
예술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고, 수학은 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구조를 보는 눈이 생기면 이 둘은 구분되지 않는다. 창작은 구조 속의 놀이이고, 수학은 놀이의 구조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창작이란 ‘재능 있는 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구조를 읽고 노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누구나 구조를 보고, 느끼고, 재구성할 수 있다. 단, 그 눈을 뜨게 해 주는 언어와 지도가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실험해 보고 싶다.
수학이 아닌 형태감각을 훈련하고, 예술이 아닌 관찰력을 기르고, 창작이 아닌 놀이를 한다.
그리고 그 놀이를 통해,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천재성을 서서히 깨우는 것이다.
천재성은 어느 특별한 이의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는 너무 오래, 창작을 두려워하도록 길들여져 있었던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