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는 세계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얕았고, 겉돌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책으로 눈을 돌렸다.
어떤 이들은 ‘현실도 모르고 책만 본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책이 곧 현실의 또 다른 층위였고,
그 안에서야 비로소 나와 같은 세계를 본 자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책 속 사람들은 나와 같았다.
그들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고, 고뇌를 사랑했고, 답보다 질문을 신뢰했다.
그들과의 만남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또렷한 울림 같았다.
나는 그 울림을 따라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내게 세상을 통과하는 눈을 주었다.
사람이 구조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재능인지
그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배웠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올 때면, 나는 혼자였다.
왜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을까?
왜 삶의 구조를 보려 하지 않을까?
내가 책에서 만난 이들은 다 나처럼 생각했는데,
왜 현실의 사람들은 그렇게 다를까?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사유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감정을, 누군가는 관계를, 누군가는 생존을 먼저 배운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유는 두렵고 낯설고, 때론 위협적이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내가 만난 사유의 세계를, 사람들과 나눌 수는 없을까?
그들에게도 철학이, 예술이, 수학과 과학이 놀이터가 될 수는 없을까?
나는 믿는다.
사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불붙는 것이다.
불씨가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다.
책과 함께 자란 나,
현실을 구조로 바라보는 나,
사유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나는,
이제 그 불씨가 되고 싶다.
나와 같았던 누군가를 위한 작은 불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