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은 가난하고, 교육 수준은 낮고,
서구 중심의 잣대에선 “발전하지 못한” 인류라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들에겐 리듬이 있고, 웃음이 있고,
오늘을 사는 본능적 충만함이 있다.
그들의 몸엔 아직 자연이 흐르고,
가공되지 않은 감정의 순수함이 살아 있다.
반면 우리 민족은 다르다.
늘 누군가를 이겨야만 안심하고,
경쟁이 곧 삶이고,
오늘의 쉼은 내일의 낙오로 바뀔까 두려운 삶.
누가 더 성공했는지,
누가 더 공부를 잘했는지,
누가 더 ‘열심히’ 살았는지를
집계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이것이 과연 천성인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IMF…
모든 시대는 “살아남기 위한 전투”였다.
삶은 늘 생존과 직결되었고,
그 생존을 위해선 감정도, 감각도,
심지어 쾌락도 억눌러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을 봉인해온 게 아닐까.
그러니 이건 역사적 유전의 문제라기보다는
집단적 기억의 압축과 반복이다.
후천적으로 우리는 ‘무감각의 민족’이 되었다.
쾌락보다 책임, 휴식보다 불안,
웃음보다 참음이 미덕인 문화.
“행복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조차 낯설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삶의 속도를 높였지만,
속도는 깊이를 빼앗는다.
기술은 편리함을 주지만, 존재의 기쁨을 주진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멀쩡한 몸을 가지고도
행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