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는 과연 국가의 비밀 요원일까, 아니면 여자 꼬시는 기술을 국가에서 인증해준 최초의 남자일까?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 총은 자꾸 빗나가고, 폭탄은 매번 예상보다 빨리 터지는데, 여자만큼은 백발백중이다.
‘미션’이라 하면 일단 한잔 제안하고, 추파부터 던지는 것이 의례다.
정보를 캐내려는 작전일 수도 있겠지만, 그 빈도와 자연스러움은 어딘가 수상하다.
아니, 무기 훈련보다 먼저 ‘여성 유혹’ 같은 과목을 수료한 것 아닐까?
피어스 브로스넌 시절의 본드는 특히나 느끼하다.
턱선이 날카로운 건지, 대사가 날카로운 건지 헷갈릴 정도로 치명적인데도 자꾸만 한 박자 느리다.
여자들은 죄다 넘어가고, 시청자만 멈칫멈칫.
그 느끼함은 ‘위장 수트’라고 하기엔 너무 진심 같다.
총은 잘 못 쏘고, 액션은 살짝 어색한데, 매번 미녀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본드는 역시 프로다”라는 식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 분야의 프로인지는 끝까지 명확하지 않는다.
스파이인지, 바람둥이인지, 아니면 ‘국가가 파견한 놈팽이’인지.
아마 007 훈련 아카데미 커리큘럼은 이렇지 않을까.
1교시: 칵테일 제조법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2교시: 침대 위에서의 정보 수집
3교시: 여자가 위험에 빠졌을 때 절묘하게 등장하는 법
4교시: 총기 교육 – 적어도 포즈는 멋지게
5교시: 느끼한 농담으로 세계 위기 무마하기
이쯤 되면, 본드는 총보다 멘트가 더 강한 무기다.
그의 가장 위험한 무기는 권총이 아니라, 그 스르르 녹아드는 한 마디.
“내 이름은 본드, 제임스 본드.”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안다.
그 순간,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미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