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수의 결정이 막히면 투표하자고 말한다.
어떤 걸 먹을지, 어디로 갈지, 어떤 생각이 더 낫다고 보는지.
내겐 이게 당연하다. 나는 모든 선택을 공유하고 싶다.
모든 존재가 의견을 가질 수 있고,
그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공정한 방식이 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야, 그런 걸 뭘 투표까지 해?”
“그냥 네가 정해.”
“그 정도는 분위기 보지, 뭘 그렇게 다 묻냐?”
아이러니한 건 이거다.
진짜 중요한 자리에서,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다수결로 갑시다!’를 외친다.
그땐 또 누구도 엉뚱하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 그러면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며 불안해한다.
사소한 일에서의 다수결은 유치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거대한 결정 앞에선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투표를 호출한다.
나는 생각한다.
투표를 일상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민주주의 아닌가?
모든 선택의 무게를 평등하게 나누고,
매번 서로를 존중하며 선택하는 연습을 한다면,
정작 중대한 일 앞에서도 우리는 덜 흔들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계속 말할 것이다.
“투표할까요?“
그 말은 단순한 선택의 방식이 아니다.
그건 나의 이상함이고, 나의 민주주의이고,
무의식 속 위계질서에 대한 엉뚱한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