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보라는 이름 아래 너무 많은 것을 허락해왔다. 기술은 늘 더 편리하고, 더 빠르고, 더 경제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것이 우리를 해방시켜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언제부터 우리 목을 조이기 시작했는가.
1811년, 잉글랜드의 러다이트들이 방직기를 부쉈다. 역사는 그들을 ‘기계를 이해하지 못한 미개한 자들’이라 적었다. 그러나 그들이 부순 것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를 핑계로 한 체제였다. 인간 노동을 탈취하고, 공동체를 해체하며,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의 손길이었다.
러다이트는 질문했다.
“우리는 이 체제에서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그 질문은 2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아무리 인간이 선의로 사용한다고 해도, 기술은 스스로의 생존 본능처럼 체제를 강화하고, 인간을 효율화하며, 비인간적인 질서 속으로 편입시킨다. 기술은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니다. 기술이 인간을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러다이트는 그 시작을 본 것이다.
그들은 진보가 인간을 파괴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들은 체제를 거부했다.
그들은 불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옳았다.
우리는 이들을 반문명적인 과격주의자라 부른다. 그러나 그 과격함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체제가 부정한 방식으로 쌓아올린 결과라는 점을 가리고 있다. 러다이트는 ‘기술은 체제’라는 진실을 몸으로 파악한 선지자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알고 있다.
기계는 단지 노동을 대체하지 않는다.
기계는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고, 인간의 관계를 대체하며, 결국 인간의 자리를 대체한다.
유니바머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이론화했고, 러다이트는 그것을 느꼈다.
러다이트는 철학자였다.
다만, 망치로 말한 철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