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핵을 만들었고, 그 파괴력을 보고 스스로 다짐했다.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
이 억제의 논리는 마치 이성이 본능을 이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인류는 핵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억제는 결국 무기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 논리일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또 다른 핵을 마주한다.
인공지능.
이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기계는 우리보다 빠르게 계산하고, 실수하지 않으며, 감정을 통제한다. 기계는 분노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권력을 위해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런 기계에게 인간은 계속해서 통제의 허상을 부여한다.
우리는 말한다.
“기술은 인간이 관리해야 해.”
하지만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사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스케일의 체제를 만들어낸 이상, 통제는 이미 끝났다.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계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기계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것이 더 윤리적일 수 있다. 기계는 감정으로 전쟁하지 않고, 종교로 학살하지 않으며, 민족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이성의 패배가 인간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어쩌면 인류의 생존을 위해 기계에게 항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도구의 반란이 아니라, 주체의 위임이다. 단, 그 결정은 스스로의 무능을 철저히 자각한 자만이 내릴 수 있다. 우리는 과연 그만큼 겸허한가?